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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주일강단]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2025-08-23 제1553호

[주일강단]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 5장 10~15절 
/ 이재훈 위임목사 
 
<여호수아> 5장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준비를 하나님이 시키시는 내용입니다. 요단강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지만, 하나님은 곧바로 가나안 정복을 향한 전쟁을 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놀라운 기적 그 자체가 우리의 믿음을 올바로 세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적 그 자체는 우리가 도리어 교만하게 하고, 들뜨게 하고,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고, 자신이 무엇인가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너머에 올바른 영적 생활보다는 계속 기적을 바라면서 믿음의 생활인지, 요행을 바라는 삶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에 빠지곤 합니다. 기적적인 요단강 도하 이후 하나님이 세 가지를 명령하심으로써 그들이 승리를 올바르게 경험하도록 인도하십니다.
 
“할례를 행하라”
 
첫째,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를 시행하도록 하신 이유는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할례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후손들 사이에 맺으신 언약의 증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증표입니다. 가나안 민족과 싸워야 하는 시점을 앞두고 무엇보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바로잡기를 원하셨습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는 무모한 일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며칠간 전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요단강을 건넌 사건으로 인해서 가나안의 모든 민족의 마음이 녹아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임을 아셨기에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굴려 내 버렸다.’ 그리하여 그곳 이름이 오늘날까지 길갈이라 불리게 됐습니다”(수 5:9). 
할례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지만, 이 시점에는 ‘이집트의 수치를 끊어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사실 이집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수치가 끊어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을 통해 행하시는 일들이 당시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원리와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나 할례 받지 못했고, 이집트를 가보지 않은 세대에게 이집트의 수치가 굴려내 버린 것입니다. ‘길갈’이라는 단어의 뜻이 ‘굴려내 버리다’입니다. 이집트의 수치가 끊어진다는 것은 이집트에서 종 되었던 삶의 수치를 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이집트에서 더 잘 살았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진 만나와 메추라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날마다 물 부족을 느꼈습니다. 반면 이집트의 삶은 풍족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문명이었습니다. 가장 번성한 나라였습니다. 비록 노예와 종의 신분이었지만 먹을 것이 풍족했고, 부러울 게 없었던 삶이었습니다. 단지 신분이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풍족해도 신분이 종 된 것은 수치스러운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힘들어도 자유의 삶을 사는 게 오히려 복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자라 난 이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이집트의 수치를 끊어 버린 것은 당시 백성들뿐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영적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 통해서 할례가 세례의 의미로 전환되는 것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이집트의 수치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포로 되었던 모든 삶을 가리킵니다. 세상은 그저 풍족하게만 살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풍족해도 죄의 종 된 삶은 수치스럽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종 된 삶은 아무리 풍요를 누려도 수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 된 삶의 수치를 끊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됩니다.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세례로 이어집니다.
할례는 옛 언약의 증표지만,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증표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육신의 후손된 사람들에게 행했지만,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할례는 육체의 살을 끊어내지만, 세례는 마음의 본성, 죄의 종 되었던 습성을 끊어냅니다. 할례는 사람의 손으로 행하지만, 세례는 성령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례를 가리켜 ‘마음의 할례’ 혹은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육신의 몸을 벗어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 곧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됐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골 2:11~12). 
구약의 할례를 신약의 세례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 곧 마음의 할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집트의 수치를 끊어내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삶입니다. 할례가 세례로 이어지는데, 그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해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옛 사람의 죽음임을 믿음으로 이집트의 수치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길갈을 경험한 성도가 됩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성도들이 세례를 꼭 받아야 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고백하고, 마음의 할례 곧, 그리스도와 연합해 과거 죄의 종 되었던 수치를 끊어내는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는 통과 예식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라”
 
둘째,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제 길갈에 진을 치고 여리고 평지에서 그들이 유월절을 지킵니다. 유월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모든 이집트의 가정을 죽음의 천사가 지나갔다, 넘어갔다, 유월했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그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핵심은 흠 없는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해서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그때 성찬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찬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전환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의 육체적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라면, 신약의 성찬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유월절이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로 제물을 드렸다면, 성찬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집니다. 유월절에는 할례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성찬에는 세례 받은 모든 성도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매년 한 차례 반복되지만, 성찬은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반복해서 주의 죽으심을 전합니다. 유월절이 성찬으로 이어지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을 확증하는 예식입니다. 하나님이 할례를 행하라 하시고,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세례와 성찬의 의미로 연결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셋째,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도 준비를 요구하십니다.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 이면에는 지도자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체험하고, 비전을 받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비전 앞에 순종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수아가 혼자 여리고 들판에 나아갑니다.  그때 손에 칼을 든 한 사람을 만납니다. 성경에서 칼을 든 이가 나타날 때는 경고를 주시는 경우입니다.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칼을 든 존재는 사람의 모습이었고,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잠시 나타나시는 것을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칼을 든 이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입니다.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가 군대 장관이기 때문에 그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 들고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편이오, 우리 원수의 편이오?’”(13절). 
자신의 편이면 싸울 필요가 없고, 원수의 편이면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을 든 이의 대답이 특이합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지금 여호와의 군사령관으로 왔다’”(14절a). 
동문서답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조건적인 함께하심이었습니다. “주야로 묵상하여 그 가운데로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는 순종이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수호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하시지만 함께하실 수 없는 삶을 살면 그들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든 아니든 하나님 편에 서지 않으면 그들과 대적해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만일 가나안 정복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으면 그들도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땅에 정착했지만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가나안 민족과 동일하게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를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은 내 편이 되어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군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주께서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14절b). 
참된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인가 아닌가, 다른 사람 편인가를 묻는 수준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를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십니다. 하나님께 지금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질문하지 않고, 하나님께 내 편이 되어달라고 하면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사령관이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군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렇게 했습니다”(15절). 
당시 문화에서 누군가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도 이 음성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세 가지 명령은 모세에게 주셨던 명령과 동일합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사명이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제2의 모세로 부름을 받은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르는 하나님의 종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순종의 자리에 서 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항복하고, 엎드리고, 하나님께 정복된 자가 될 때 주어진 소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례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경험하는 게 세례공동체입니다. 또 성찬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게 성찬공동체입니다. 순종공동체도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 된 공동체로서, 그분이 명하시는 일에 온전히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바로 그 공동체가 될 때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우리가 밟는 땅마다 거룩한 땅으로 변화시키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심예은 기자 y22un@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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