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어둠 속에서 빛나는 믿음
<여호수아> 2:8~18
/이재훈 위임목사
하나님은 계획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상 밖 인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도덕한 사람들, 원수까지도 사용하십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라합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 영웅들의 이름이 열거되는데, 라합의 이름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라합은 믿음의 전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여인입니다. 믿음의 본질, 하나님 은혜로 얻는 구원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는 인물이 라합이기에 등장한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따라 구원받은 믿음
라합이 구원받은 사건을 <여호수아> 2장에서 자세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그녀가 예수님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유다 족속의 족장이었던 살몬과 결혼해서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라합의 변화에 대해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지 않는 한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반면에 이교도적이고 타락한 사람들 속에서마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던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사들의 날개 그늘 아래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라합이 그랬습니다. <여호수아> 2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2명의 정탐꾼을 여리고성을 정탐하도록 보냈습니다. 정탐꾼들이 여리고 성벽 위에 있던 라합의 집에 숨어들었습니다. 여리고 경찰이 정탐꾼들의 잠입 사실을 파악했고, 여리고 왕이 라합의 집에 있는 정탐꾼들을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 거짓말로 여리고 경찰을 따돌립니다. 정탐꾼들을 살려주면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할 때 자신과 가족들을 살려줄 것을 약속받습니다. 라합의 도움으로 여리고를 안전하게 빠져나온 정탐꾼들은 라합을 통하여 얻은 정보를 여호수아에게 보고합니다.
지금 여리고는 심판 직전에 있습니다. 어두운 그늘 아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라합의 믿음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믿음’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믿음이란 어둠 속에서 비추어오는 한 줄기 빛을 보고, 자기의 몸을 그 빛에 내던지는 모험이다.”
라합의 믿음은 어둠 속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따라 구원받은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믿음
라합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살려주고 여리고 경찰을 따돌린 것은 생명을 내건 일이었습니다. 라합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은 정탐꾼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의도적으로 거짓말해서 여리고 경찰을 따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시고, 전능하시며, 능력이 있으신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에 대한 두려움에 우리가 사로잡혀 있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져 있습니다’”(9절).
“우리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다 녹아내렸고 당신들 때문에 모두 용기를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1절).
라합의 말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요, 경외심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위험한 선택을 하게 했습니다.
은혜로 얻은 믿음
둘째, 라합의 믿음은 은혜로 얻은 믿음입니다. 정탐꾼들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 믿은 게 아니라 이미 여리고에 퍼져 있는 소문을 듣고 가지게 된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멸망에 처한 여리고 도성에서 어둠 속에 거하던 한 여인을 구원하심으로 정탐꾼들도 도우셨습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을 우리가 구원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먼저 행하신 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라합에게는 소문으로 들은 정보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라합이 들었던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출애굽 때 홍해를 가르셨고,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두 나라를 진멸하셨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 정보만으로 라합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은 것이 은혜입니다. 라합은 출애굽을 경험하지도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체험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가 일으킨 기적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고백을 했습니다.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 최고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믿음은 지식의 분량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진리를 굳게 붙잡지 않으면 정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진리를 굳게 붙잡으면 구원을 얻는 믿음이 주어집니다. 이 시대에는 지식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내가 믿음으로 얼마나 주장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지식의 홍수 속에서 진리를 붙잡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을 얻는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라합처럼 들었던 내용이 많지 않지만, 진리를 굳게 믿음으로 붙잡는다면 그 믿음이 우리 안에 일어납니다. 많은 것을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과연 붙잡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
셋째, 라합의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었습니다. 라합은 정보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했습니다.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첩자들을 숨겨 주고 다른 길로 가게 했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마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약 2:25~26).
라합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 행함으로 나타나는 참된 믿음이었습니다. 라합의 행함이 자신과 가족들을 살리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생명과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멸망에 처할 운명에 있습니다. 진노와 심판 앞에서 우리가 믿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지만, 영원한 죽음은 피할 길이 있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피해야 한다면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살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피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믿음의 행동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다른 사람들까지 구원하는 믿음
넷째, 라합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까지 구원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여호와를 두고 내게 맹세해 주십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니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내게 확실한 징표를 주십시오. 내 부모와 내 형제자매들의 목숨을 살려 주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지켜 주며 당신들이 우리 생명을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12~13절).
여리고가 장차 멸망할 때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을 함께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는 믿음입니다. 라합은 정탐꾼이 돌아간 이후부터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모았을 것입니다. 일부는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진멸될 거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라합의 집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믿는다면 라합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믿음의 행동입니다.
세상과 맞서는 믿음
다섯째, 라합의 믿음은 당시 세상과 맞서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소문을 라합만 들은 게 아닙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한 걸보면 다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라합만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믿을 때 따라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매우 외로운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당시 세상과 맞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틴 루터가 1517년 로마 가톨릭 세력에 맞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을 때 죽기를 각오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세상과 맞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신학적 논쟁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때 아타나시우스는 모두가 옳지 않은 것을 믿을 때 올바른 믿음을 외롭게 지키고자 싸웠습니다. 그로 인해서 삼위일체 교리가 온전히 이루어졌고, 우리가 믿는 정통 기독교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라합도 참된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없는 세상에 대항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항할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지지한다고 옳은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을 대항하는 믿음입니다. 라합의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참 이스라엘의 믿음입니다. 라합은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참된 믿음을 보여주었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다는 사례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노력과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라합입니다. 과거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씻겨 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심판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원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역사를 심판으로 끝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 항상 남겨두고 구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때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을 때 롯과 가족들을 살리셨습니다. 애굽의 심판이 있을 때는 약속을 믿는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도 구원받고 남은 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작정하셨을지라도 라합처럼 믿음으로 반응하고 돌아오는 이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어두운 심판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을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라합이 구원받은 모습은 우리가 구원받는 모습을 미리 보여줍니다. 우상을 섬기고, 타락한 삶을 살았던 이방 여인이 이제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죄인 된 우리가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변화의 모형입니다. 우리 과거의 허물과 죄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멸망 받을 여리고에서 구원받은 라합처럼, 멸망 받을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기를 하나님이 기대하십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