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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천년왕국과 흰보좌 심판 

[주일강단] 천년왕국과 흰보좌 심판 

2025-06-14 제1544호

천년왕국과 흰보좌 심판 
<요한계시록> 20:1~15
/이재훈 위임목사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마지막 날 우리가 만날 주님의 모습을 두 가지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신랑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의 결혼잔치에 신랑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우리는 신부로서 만나야 합니다. 신부의 책임은 거룩하고 정결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랑을 기쁨으로 맞이하도록 순결한 옷을 입고, 의로운 행실로 자신을 단장해야 합니다. 둘째, 싸우는 전사로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악과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흰말을 타고 오시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장군이 승리하면 흰말을 타고 나타났기에 ‘흰말을 타고 오시는 분’은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신랑과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는 전혀 다른 성격입니다. 이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보완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두 가지 측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신랑과의 친밀한 연합 그리고 기쁨과 축복의 자유 측면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과 싸워야 하는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랑을 신부가 만나는 친밀함의 기쁨과 악과 싸워 승리하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곧 구원입니다. 날마다 신랑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기대와 소망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림으로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를 따라 승리하는 구원받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 함께 군사로 참여하는 모습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악과 싸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해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싸우는 군대 장관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구약에 많은 전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용과 짐승들과 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흰말을 타신 그리스도의 승리
 
<요한계시록> 19장 후반부에 흰말을 타신 그리스도의 세 가지 이름이 나타납니다. 첫째, ‘충성과 진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셋째, ‘왕의 왕, 주의 주’입니다. 
“그는 옥에서 나와 땅의 사방에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현혹해 전쟁을 위해 그들을 집결시킬 것입니다.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알과 같을 것입니다”(8절). 
모든 용의 세력, 사단의 세력을 집결시킴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나 마지막 전쟁에서 흰말을 타신 그리스도의 예리한 칼과 쇠지팡이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십니다. 여러 번 전쟁이 반복되고, 16장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이 19장과 20장에서 반복되며, 점진적으로 구체화되는 표현 방법을 주목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이를 ‘점진적 반복’이라고 합니다. 앞서 주어진 내용을 요약하고, 또 다시 설명하는 방법으로 각도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동일한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연대순으로 여러 사건을 맞춰놓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여러 경고성 심판이 있지만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백성들에게는 곧 구원의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되어 있다는 진리의 말씀을 여러 이미지와 환상, 표현들을 통해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굳이 시점을 따지자면, <요한계시록> 12장에 나타난 사건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한 여인이 잉태해서 해산할 때가 됐는데 큰 붉은 용이 나타나 아이를 삼키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이려는 용의 공격입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가엘과 천사들이 용과 용의 사자들과 싸워 하늘에서 용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때 이미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이미 사단은 결박되었습니다.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단은 이 땅에서 활동하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요한계시록> 20장은 마지막 심판과 사단과의 싸움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줍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천년’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네 부분으로 나눠 살펴보면, 20장 1~3절에서는 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사슬로 사단 마귀 곧 옛 뱀을 천년 동안 묶어놓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풀려나는데 4~6절에서는 순교자들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한다고 말씀합니다. 7~10절에서는 천년이 다 차면 사단이 결박에서 풀려나 전쟁을 위해 세력을 집결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불타는 유황못으로 던지심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11~15절에서는 희고 큰 보좌 앞에서 생명책에 근거해 모든 이들을 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년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사건들을 표현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천년을 문자적으로 실제 기간이라고 해석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했다는 것입니다. 19장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셨기에 20장이 예수님 재림 이후 천년이 되는 것입니다. 20장과 21장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재림해도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시작되지 않고 천년이라는 기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 이후 천년이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천년설’이라고 합니다. ‘천년전에 재림’ 혹은 ‘재림 후에 천년’이라고 정리하면 됩니다. 천년 동안 통치가 이루어지고, 천년 후에 진정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한 번에 재림을 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천년 왕국의 시간이 지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한국교회 선배님들도 많이 받아들였고, 서구권의 많은 성도도 이 관점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종말을 가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해석이 어느 하나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조금 더 균형 있는 해석인지를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또 하나는 천년이라는 기간이 문자적으로 실제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천년의 시점이 재림 후가 아니라 재림 전에 있을 거라는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데, 재림 전에 천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후천년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 천년의 기간에 매우 중요한 영적 부흥이 일어날 거라고 설명합니다. 영향력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주장하는 분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천년이라는 숫자가 왜 문자적인 숫자일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앞에 나오는 14만 4천이라는 숫자, 또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숫자가 문자적인 숫자라고 볼 수 없는데, 이것만 문자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칼뱅이나 루터, 초대교회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학자들은 문자적인 천년이 아니라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와 다시 오실 때 기간, 그 세대가 곧 천년이라고 했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이미 <계시록> 15장에서 말씀했는데도 16장, 19장, 20장에 계속 나옵니다. <계시록>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도 연대적인 순서대로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처음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에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를 ‘무천년설’이라고 하는데, 저는 ‘현천년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현재가 곧 천년이라는 것입니다. 20장에 나오는데 천년이라는 기간에 사단이 무저갱에 묶인다는게 중요합니다. 천년이 문자적이냐 상징적이냐는 것보다 중요한 게 일정 기간 사단이 묶여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만국을 현혹하지 못한다
 
“그는 용, 곧 마귀이며 사탄인 옛 뱀을 붙잡아 1,000년 동안 묶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봉인해 1,000년이 차기까지 다시는 만국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일 후에 그는 잠시 동안 풀려나야 할 것입니다”(2~3절).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봉인해 천년 동안 만국을 다시는 현혹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천년 혹은 현천년설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와 재림,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단이 결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 해석의 키는 ‘다시는 만국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체 활동이 결박된 게 아니라 만국을 현혹하는 활동이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만국을 현혹하는 활동을 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사단의 영향력이 매우 축소되는 상대적 결박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 사단이 일부 활동을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건드리지 못하는 절대적 결박이 된 것입니다. 천년 동안 결박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만국을 현혹하는 데 있어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과 다르게 제한됐다는 것이고, 완전히 결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완전히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기점으로 사단은 더는 만국을 현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련해서는 절대적으로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백성들의 구원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박해는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들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사단이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도록 절대적으로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만국을 현혹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간이 천년 동안의 결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인 통치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되고 거룩합니다.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 권세도 갖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돼 그와 함께 1,000년 동안 통치할 것입니다”(6절).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가 왕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승리 이후 주의 재림 사이 천년 동안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통치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인 통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한다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심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우리가 영향력을 미치는 중보적인 통치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통치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다스림의 통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삼중의 과정이 구성됩니다. 20장 1~3절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 곧 세상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중간 상태가 있습니다. 이 중간 상태는 하늘의 왕노릇하는 것입니다(계 20:4~6). 세 번째는 영원히 우리가 낙원에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계 21:1~8, 9; 22:5).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권세를 가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공의로운 심판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우리는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지막 날이 임할 때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회개하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중보적인 통치자가 되어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심판이 아닙니다. 창조입니다. 20장에서 흰보좌에 앉으신 분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지만, 21장에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세상은 결코 그 상태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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