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3) - 서머나교회
<요한계시록> 2:8~11
/ 박종길 목사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을 주제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머나교회’입니다.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65km 지점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아의 왕관’, ‘이오니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습니다. 서머나는 지금도 굉장히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입니다. 서머나는 로마 제국에 대한 충성이 다른 도시에 비해서 굉장히 컸습니다. 그 덕에 로마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원조와 안전을 보장받았습니다. 황제 숭배와 신전 건축으로 인한 경제 활성화로 부를 가졌습니다. 이 도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켰던 서머나교회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이 86세임에도 불구하고 황제를 숭배하지 않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서머나교회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인 빌라델비아교회와 함께 칭찬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서머나교회가 받은 칭찬
“너는 서머나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써라.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 곧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 환란과 가난을 알지만 실은 네가 부자다. 또 내가 자칭 유대 사람이라 하는 사람들의 모욕도 알지만 실은 그들이 유대 사람들이 아니라 사탄의 집단이다”(8~9절).
서머나교회는 그들이 많은 환란과 고난 가운데 있고, 가난하지만, 실제로는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황제를 숭배하는 것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생활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손해보고,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너희는 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 부유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외모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얼마나 크고, 강대한 나라입니까? 부와 사치와 문화가 아주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는 음란과 우상숭배와 탐욕의 악취가 났습니다. 분열과 음모가 난무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겉을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을 보시고,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이 아니라 중심과 의도를 보십니다. 사람들이 크고 화려한 건물을 칭송할 때 예수님은 그것이 무너지는 심판을 보십니다.
서머나교회는 로마의 황제숭배를 거절한 이유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종교적으로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 관리들에게 고발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서머나에 있는 성도들을 철저하게 박해하고, 핍박하고, 고소했습니다. 로마의 관리들 역시 서머나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서머나교회는 로마 제국과 동족으로부터 고난을 받으며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머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과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이 땅에서 환란과 궁핍을 겪었지만 굴복하거나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과 진리와 영생을 소유 했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신앙이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받는 박해가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전 6:9~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겉으로는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이라면,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교회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교회라면 참 문제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부유함을 갖고, 복음과 십자가와 부르심의 사명으로 인한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졌다고 고백하는 바울과 서머나교회가 보여주는 칭찬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머나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
“너는 고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마귀가 너희 가운데 몇몇을 감옥에 집어넣을 텐데 너희가 10일 동안 핍박을 받을 것이다. 너는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에서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10~11절).
예수님이 서머나교회에 “이제 고난과 환란과 가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고난을 당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고 어려움을 겪지만 10일 동안이라고 하셨습니다. ‘10’이라는 숫자는 완성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다니엘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열흘이 지났을 때 그들의 얼굴을 보니 왕이 내린 귀한 음식을 먹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아름답고 건강하고 좋아 보였습니다”(단 1:14~15).
예수님이 서머나교회에 보내는 말씀은 고난을 당한 것이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지 않고 제한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핍박과 환란, 믿음을 가진 성도를 향한 핍박도 제한이 있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박해와 환란이 계속될 것 같지만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이 모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한 그 시간이 지나면 핍박과 고난과 환란과 박해를 능가하고도 남을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환란의 날짜조차 줄여 주셔서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환란도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큰 환난이 있을 것이다. 그런 환난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날들을 줄여 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날들을 줄여 주실 것이다”(마 24:21~22).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대환난 조차 하나님이 줄여 주십니다.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그날을 줄여주십니다. 환란과 박해가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기간 안에서 이뤄집니다. 로마 제국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기독교를 핍박하고 생존권을 박탈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이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이들은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들이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켜서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승리는 인내를 말하고, 인내는 순교를 의미합니다. 고난이 없다는 게 아니라 고난의 현실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우리가 승리한다고 말씀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약속
“누구든지 사로잡힐 사람은 사로잡힐 것이요, 누구든지 칼로 죽임을 당할 사람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습니다”(계 13:10).
사도 요한도, 예수님도 우리에게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니다. 도리어 고난과 핍박을 받지만 우리가 죽도록 충성한다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은 둘째 사망, 즉 우리의 육체적 호흡이 끊어지는 첫째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첫째 사망 이후에 있는 심판 앞에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이 있는데, 이기는 자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자들은 둘째 사망의 이르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는 게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생명을 바치는 충성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목숨까지 거는 태도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독한 박해와 궁핍한 삶으로 어려운 서머나교회를 향해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고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사단은 춤을 주고 승리했다고 좋아했겠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시키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구원을 완성했습니다. 박해와 핍박 가운데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과 핍박에 낙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마지막 날 얻는 이 땅에서의 고난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영광이, 그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생명의 면류관’으로 번역했지만, 원어적인 정확한 번역은 ‘월계관’입니다. 월계관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진 상급입니다. 그 사람이 잔치에 초대를 받으면 월계관을 쓰고 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을 만날 그날을 소망한다면 완주한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 쓴 편지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경주를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다”(딤후 4:7~8).
인내하고 견디며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대답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마 25: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명과 달란트, 부르심을 위해 서머나교회가 박해 가운데도 믿음을 지켰던 것처럼, 죽도록 충성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자의 면류관을 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의 환란과 가난을 알지만 너는 실제로는 부자다. 고난을 당할테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고 이기는 사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가 서머나교회 같이 어린양 예수님을 따라가며 칭찬과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믿음을 이어가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