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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2026-04-18 제1585호

[맛있는 말씀 해설(잠 21:14)]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이 말씀을 처음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경이 뇌물을 권하는 것인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출 23:8)고 분명히 금하신 하나님이 <잠언>에서는 뇌물이 분노를 그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말이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잠언>이라는 책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성서해석학에서는 <잠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처방적 잠언’(prescriptive proverb)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서술적 잠언’(descriptive proverb)이다. <잠언> 21장 14절은 후자에 해당한다. “뇌물을 주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물과 뇌물이 실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난다. 전반절은 ‘은밀한 선물’이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후반절은 ‘품 안의 뇌물’이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 시는 후반절에서 전반절의 의미를 반복하면서 한층 더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도 ‘노’보다 ‘맹렬한 분’ 훨씬 격렬한 분노를 가리키고, 그에 대응해 ‘선물’보다 더 강한 표현인 ‘뇌물’이 사용된다. 이는 분노의 강도가 극에 달할수록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더 큰 대가가 따른다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밀한’과 ‘품 안의’라는 표현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건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드러내 놓고 주는 선물은 자칫 과시되기 쉽고,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나 체면의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면, 남몰래 건네는 정성은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인다.
성경에도 <잠언>과 꼭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20년 넘게 쌓인 분노를 알기에 수백 마리의 가축을 앞세워 보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야곱의 속마음을 보면 이것은 순수한 감사의 선물이라기보다 자기 잘못으로 빚어진 분노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증여였다. 
아비가일 역시 남편 나발의 무례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달려갔다(삼상 25장). 이 역시 순수한 호의라기보다는 절박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두 사례 모두 순수한 선물과 정의를 왜곡하는 뇌물 경계 어딘가에 있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물’이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늘 뚜렷하지 않은 현실을 성경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언> 21장 14절의 지혜이다. 이 말씀은 뇌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누군가 내게 분노하고 있을 때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기보다 먼저 조용히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 잘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드러내 놓고 체면을 세우는 화해가 아니라 은밀하게 마음을 전하는 겸손이 분노의 불을 끄는 참된 방법이다. 예수님도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 5:25)고 말씀하셨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세상의 방식을 관찰한 <잠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이다.
/오은규 목사(성동광진 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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