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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당하는 죽음 vs 맞이하는 죽음(웰다잉)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당하는 죽음 vs 맞이하는 죽음(웰다잉)

2024-05-25 제1493호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당하는 죽음 vs 맞이하는 죽음(웰다잉)
잘 죽음으로 잘 살아지는 역설의 세계관

                                             
사람은 그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로 자신을 드러낸다. 머릿속과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함으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표현한다. 요즘 나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자주 많이 나오는가? 어떤 말을 자꾸 하고 싶고, 입만 열면 그 말을 하는가? 나는 죽는 이야기다. ‘잘 죽기’, ‘죽음 준비’, ‘결국은 잘 살기’ 등으로 이어지는 요즘 나의 키워드는 ‘웰다잉(well dying)’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꺼리는 단어다. 그런데 요즘 내 주변에서 보는 흥미로운 현상은 죽음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죽음 대처 방법에 대한 갈증이다.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말하고 싶고, 마음껏 드러내고 싶었던 속내가 바로 죽음 이야기 아닐까? 스스로 감히 꺼내지 못했던 죽음 이야기를 대놓고 터뜨리는 나에게 풀어내고 싶었던 실타래를 끄집어내 줬다며 고마워하는 분들을 본다. 이는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문제에서 자유롭고 싶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며, 진리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이리라! 
두 달 전 나는 ‘대한웰다잉협회’ 심화 교육과정 중에 ‘입관 체험’을 했다. 유서를 쓰고 수의를 입고 깜깜한 관 속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을 경험하며 죽음과 더욱 친해진 느낌이다. 더욱이 바로 다음 날이 부활 주일이어서 한층 더 생생한 생명의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 함께 참여한 동료 교육생들의 반응은 무서웠다, 답답했다, 추웠다, 슬펐다 등으로 다양했다. 나는 관 속에 누워 고마운 사람, 미안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회한과 아쉬움으로 많이 울기도 했다. 하지만 고단했던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사랑하는 하나님 품 안에 안긴 듯 수의가 가볍고 아주 편안했다.
초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요즘 중년과 노년의 제1 관심사는 단연코 건강이다. 모두가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고, 건강을 위해서는 최우선으로 노력하고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쓴다. 건강 지식은 거의 의사 수준이 되어 잘못하면 100살까지 살게 될 형편이다. 그래서 보험과 건강식품이 넘쳐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온갖 살 준비’를 다한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말이다. 정작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몇 년 전 TV에서 ‘서른아홉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드라마 후반에 죽음을 3개월쯤 앞둔 39세 여주인공이 자기 뜻에 따라 친구들이 준비해준 아름다운 사전 이별식을 한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동안 살면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초대했다. 세상 떠나기 전 밥 한 끼 대접하며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이별식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사랑하는 분들과 따뜻하게 헤어지고 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실은 나도 심리적 죽음을 경험했고(두 번의 암 수술과 우울증), 호스피스 완화의료 상담과 임상목회실습(CPE)을 통해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났다. 수술실 환자 기도를 맡았던 경험으로 질병과 죽음은 나에게 각별하게 생명으로 인도해주는 영역이다. 이 특별한 경험으로 인하여 나는 나의 죽음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여기서 죽음 준비를 자살로 오해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 손안에 있다. 나는 언제든 하나님이 부르실 그 날까지 지금 주신 생명과 시간을 정말 감사하며 누릴 것이다. 수술과 치료과정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로 나를 재창조하시고, 놀라운 건강을 다시 주셨다. 자전거로 전국을 달리는 지금의 나는 감사와 충만함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후회 없이 가기 위해 내가 현실적으로 처리하고 준비해야 할 일을 해나가고 있던 즈음, 친구의 권유로 웰다잉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과정과 심화 과정을 마치고,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상담사 교육도 마쳤고 지금은 자서전 쓰기 지도사 자격증 과정에서 자서전 쓰기 지도와 영상 자서전 만들기를 배우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새로 시작한 이 길을 앞서가시고, 함께 가는 귀한 분들이 많아서 든든하다. 특히 암 생존자들(Cancer survivors)의 모임인 ‘암잇아웃’의 동료들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웰다잉사역’으로 활동하시는 것에 감탄과 감사, 응원을 보내며 나도 동참하려고 한다. 
기독교의 논리는 역설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 9:23).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39). 사도 바울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며(롬 8:13),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말했다(고전 15:31). <오자병법>이나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필사즉생’은 전쟁의 승리를 위한 싸움의 법칙이라면,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의 자아가 ‘죽을 때’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된다’는 역설이다. 죽어야 산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십자가와 부활이다. 우리는 ‘보이는’ 이 땅에 살면서 계속 살 것을 고민하고, 잘 살려고 아등바등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 말라고 하시는 ‘보이지 않는’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자유의지로 나의 자아가 죽음으로 이 땅에서 잘 살아가되, 현실적인 죽음을 대비함으로 어쩌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기꺼이 ‘맞이하는’ 죽음을 기대한다.
/ 김영옥 성도(중종로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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