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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결혼은 결단이자 헌신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결혼은 결단이자 헌신

2023-05-27 제1444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결혼은 결단이자 헌신!
 
“저는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상대방이 결혼하고 싶어합니다. 이 사람이 내 평생의 배우자인지, 내가 한 사람과 평생 잘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으로 결혼해야 할까요?”
 
 
청년들과 상담하다 보면 단골 메뉴처럼 이야기하는 주제가 ‘결혼’이다. 결혼을 주제로 나 또한 질문을 받곤 한다. “목사님은 언제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었나요?”라는 질문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마주하며 살고, 근본적으로는 죽음이라는 불안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결혼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결혼을 확신하는 게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결혼 이후 부부 관계를 결혼 전에 먼저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 관계에서 아무리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길고 깊어도 연애 관계는 어디까지나 연애 관계일 뿐이다. 데이트하고 나면 각자 집으로 가야 하고, 나의 민낯을 확인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결혼해서 한집에 산다는 전제로 알게 되는 서로에 대한 모습이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이러한 이유로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한집에 함께 살고, 생활을 공유한다고 해서 결혼 생활을 먼저 경험하거나 배울 수는 없다. 결혼은 언약의 관계이고, 동거가 아닌 결혼이라야 주어지는 약속의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결혼을 확신하려고 할 때 대체로 나에 대한 확신보다 상대에 대한 확신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결혼과 만남을 주제로 상담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저 사람이 나의 평생의 배우자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이다. 그때마다 나는 주저없이 “확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평생의 시간이 주어져도 확신할 수 없다. 결혼을 통해 삶을 나누고, 한 몸이 될 때 진짜 서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결혼은 상대에 대한 확신이 생겨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으로 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상대에 대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모습이나 성격을 보게 되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대의 삶의 패턴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다름과 차이가 아니라 사랑의 이유로 고백할 수 있는 확신이 있고, 하나님 앞에 배우자를 사랑하기로 결단할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결혼할 때다.
<창세기>가 전하는 야곱이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그가 가정을 이루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영적으로 준비시키셨다. 그가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린 게 먼저였다.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인생,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던 인생에서 하나님 앞에 삶을 헌신하는 인생으로 바뀐 이후에 배우자를 만났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혼은 확신이 아니라 결단이자 헌신이다. 우리 삶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조차 예측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데, 평생 함께할 누군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결단과 헌신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게 아닐까?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순전하게 준비되었다면 믿음으로 고백하고, 확신하고, 결단하라.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이다.
/ 정한효 목사(W청년부)
 
“결혼은 확신이 아니라 결단이자 헌신이다. 
삶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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