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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전문가 기고]부모님의 천로역정

[전문가 기고]부모님의 천로역정

2023-05-20 제1443호

전문가 기고
 
부모님의 천로역정 
가족사 너머에 있는 한국 교회 시대사
 
 
극작가와 소설가를 통해 가공되는 인물들의 삶은 실화에 바탕을 둔 줄거리라 할지라도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가 가공한 특별한 인생스토리들은 평범하게 보이는 우리 집안과 이웃들의 가족사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한국전쟁의 시련 속에서 불거진 이데올로기 갈등, 영화 ‘국제시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일어난 상경 러시, 월남 파병, 파독 광부와 간호사 파견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조부모, 부모세대의 
특별한 헌신 그리고 신앙
 
동시대를 지낸 부모님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 스토리 주인공들이다. 그만큼 격동기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시대를 반영하는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국가와 사회뿐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의 역사도 그렇다.    최근 책〈누군가의 천로역정>(한스북스, 김상배 저)을 읽으며 깊은 공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부모님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가를 깨달았다. 전후 척박했던 시절 주님만 바라보며 교회를 사랑하고 온갖 역경을 이겨낸 기억들이 공간과 함께 머문다.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저자는 연세 든 부모님을 모시고 신혼 시절부터 노년기까지 거쳐 갔던 삶의 터전들을 찾아다닌다. 삶의 애환과 눈물의 기도, 자녀 양육기, 도전과 실패, 삶의 고비마다 역사하신 성령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들이다. 부모님의 삶을 기록하다가 저자는 성장의 기억 속에서 가족사 너머에 있는 한국 교회 시대사와 성령의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모든 성도가 가난했던 변두리 교회였지만, 초대교회와 같이 목회자와 성도가 한마음으로 전도와 봉사의 열정을 불태웠던 순수의 시대였다. 이와 반대로 경제성장이 함께 몰고 온 교회의 대형화, 물량주의가 첫사랑과 본질을 잃어가게 하는 모습들도 조명하고 있다. 
동네 천막교회에서 흙바닥에 가마니 깔고 예배를 드리다가 교회 건축을 결정했을 때, 저자는 아버지가 손수 찍은 벽돌을 모든 성도가 함께 나르며 기쁨이 충만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초라한 판잣집이었지만 냄새나는 노숙자를 집안으로 들여 목욕시키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혀 따뜻한 밥상과 함께 예수님을 증거하시던 모습, 주일학교 부장을 맡아 아이들 전도는 물론이고,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불신자 가장을 끝내 교회로 인도한 영혼 사랑의 모습도 기억에 남아있다. 사춘기 시절에는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가 마치 빈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모르핀 주사같이 여겨져 반항심이 끓어오르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리어카를 끌며 생선 장사, 채소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는 두세 시간씩 틈을 내 세차장에서 일한 돈을 모아 두 아들 이름으로 건축헌금을 하셨다. 그 시절 교회는 우리에게 믿음의 식구들과 애환을 함께 나누던 쉼터였고, 아이들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이자 부푼 마음으로 미래를 꿈꾸는 꿈터였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두 달 만에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레위기>를 통해 지켜야 할 율법을 모세에게 전해주셨다. 40년 광야 길을 지나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에 조상들이 체험한 은혜와 기적들을 후대가 기억하게 하면서 다시 한번 <신명기>를 통해 율례를 선포하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교회학교들이 50% 이상 문을 닫았다는 통계를 접하며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곧 선교 대상국이 될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우리 조부모와 부모세대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얼마나 순수하고 철저한 헌신을 했던가!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형언할 수 없는 희생을 하면서도 가난으로 인해 상처입은 자녀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기도로 그 앞길을 열어주신 모습들을 기록해보고 자녀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교회와 
다음세대 신앙교육 실태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한국의 가나안 성도가 2012년 10.5%에서 2023년 1월 30%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총인구를 5,100만 명으로 볼 때 교회 출석자는 550만 명, 가나안 성도는 공식적으로 2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교회를 나가다가 아직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사라진 사람이 15%에 이른다. 출석교회 현장 예배는 나가지 않고, 다른 교회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플로팅 크리스천’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종교사회학적 용어가 있다. 영적인 욕구는 있지만, 제도권 교회는 이제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지나치게 반기거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귀찮고 부담스러워 한다. SBNR에 가나안 성도들까지 포함하면 전체 크리스천의 절반이 넘는다. 자칭 기독교 국가라 생각하는 유럽은 전체 크리스천 비율이 70%정도 되지만, 교회는 출석하지 않는 성도들이 많아 교회당이 텅텅 비어 있다. 교회당이 술집이나 극장으로 바뀌는 유럽 교회를 한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 서울 성수동에도 교회 건물이 클럽으로 바뀐 예가 있다. 김포에서는 교회 건물이 대형 베이커리 매장으로 팔린 경우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변화 중 하나는 한국 성도들의 신앙이 약화한 점이다. 최근 미국 퓨리서치센터에서 전 세계 1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성도의 신앙심이 가장 크게 하락했다. 방역정책으로 교회당을 셧다운하는 동안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지면서 성령의 임재 가운데 은혜받고, 목사님의 축도, 교회 봉사, 식당에서 교제하며 나누는 식사 등 대면 중심의 신앙생활이 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래 교회 리더십으로 바통터치 해야 하는 30~40대의 신앙이 가장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생활 스트레스와 가사, 육아 등에 지쳐있다고 응답한 젊은 부부들이 절반이 넘는다. 어떤 교회에서는 부목사님 주관으로 3040세대만 별도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예배를 드리게 했더니 인근 지역 3040 부부들이 많이 찾아와 예배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시끄럽고 난장판인 현장을 인내한 열매다.     
교회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평일 신앙생활을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 “전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교회 다니는 부모인데도 자녀에게 교회 가는 것을 권하는 경우가 37%밖에 되지 않았다.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말라고 하는 부모가 32%, 교회 가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도 30%에 육박했다. 부모가 교회 중직자인 경우도 27%나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치원생부터 고3 때까지 자녀를 둔 교회 다니는 전국의 부모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는데, 자녀 신앙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절반이 “모른다”고 대답했다. 73%는 교회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않고 있고, 5%만 집에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하고 있었다. 주일 교회학교 출석률은 가정예배를 드리는 경우에 높게 나타났다. 자녀들의 신앙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임을 알 수 있다.  
부흥과 함께 침투한 교회의 물량주의의 폐해는 책 <누군가의 천로역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목사님과 아버지가 땀과 기도로 개척한 교회가 주변 지역 개발과 함께 성도가 늘면서 제법 중대형교회가 되었지만, 1호 성도였던 아버지가 장로로 장립되지 못했다. 장로가 되려면 일정 헌금을 내야 하는 한국 교회의 부당한 관행이 그 교회에도 들어왔고, 결국 당장 장로헌금을 내지 못할 사람이라는 이유로 담임목사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교회 초창기 시절 배를 주리면서 열심히 심방을 다니고, 성도들의 가정사와 기도제목을 파악했던 주의 종이 교회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담임목사의 위상이 제왕적 위치에 오르면서 VIP를 만나기에도 바쁜 당회장으로 변질했다. 
밤새도록 쥐가 집 천장을 내달리는 허름한 판잣집에서 고된 하루를 마감하며 기분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자녀들과 가정예배를 거르지 않은 부모님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간증이다. 팔순을 넘긴 지금도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는 어머님의 기도는 교회와 자녀들의 성장 밀알이다. 생계보다 교회 봉사를 우선했던 늙으신 아버지는 지금도 성경 66권을 세 번째 필사하며 이웃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신다. 올해 가정의 달에는 앨범 속 흑백사진이 컬러영상으로 부활해 생명을 전해주는 믿음의 릴레이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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