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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헌금을 드리는 올바른 태도

헌금을 드리는 올바른 태도

2020-11-28 제1321호

전문가 기고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이유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교회들이 온라인 예배(영상 예배)와 대면 예배(예배당 예배)를 병행해서 드리고 있다. 몇몇 교회에서는 주일헌금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줄어들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부득이하게 교회에 못 가더라도, 예배를 못 드리더라도 성도들은 온라인으로 헌금을 보낼 수 있는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주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때는 주일헌금, 십일조 등을 미리 헌금봉투에 따로 떼어서 준비했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가 일상화되었다.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헌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헌금을 미리 준비할 여유가 없고, 혹여나 미리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교회에 나가게 되면 한꺼번에 드려야지’하는 생각에 준비한 헌금이 여기저기 다른 비용으로 빠져나갔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돈은 갖고 있으면 어떻게든 쓸 일이 생긴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음 깊은 내면을 보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3~9).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헌금하기 위해 지폐를 다리미로 다려서 드렸다, 누구는 은행에서 신권으로 바꿔서 헌금했다 등의 이야기들이다. 온라인 헌금과 자동이체가 가능한 지금 시대에 이렇게 헌금을 드린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려 드린 여인을 책망하던 당시 어떤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인이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지 않건, 그냥 병째로 드리건, 삼백 데나리온 이상으로 팔아서 돈으로 드리건 그것은 예수님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매우 값진 향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인은 자신이 소유한 가장 귀한 것으로 예수님께 정성껏 드렸을 것이다. 그 여인도 향유를 팔면 당시 노동자나 군인의 300일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계산하지 않았다. 아니, 계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반대급부를 바라는 꿍꿍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리기 원했던 여인의 중심, 마음 깊은 내면을 보시고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인이 행한 일도 말해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가치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 12:41~43). 
고액자산가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 같은 유명인들이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를 보인다. 하나는 가지고 있는 자산과 연봉이 얼마인데 고작 그것밖에 기부를 안 하느냐는 부정적 시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금액을 떠나서 기부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는 의견이다. 우리의 헌금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여기 자산 100억 원과 2억 원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두 사람이 헌금을 똑같이 1억씩 했다고 치자. 100억 가진 사람은 자산의 1%를 기부한 것이고, 2억 가진 사람은 자산의 50%를 기부했다. 너무 단위가 커서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가? 그렇다면 100만 원과 2만 원 가진 사람이 각각 1만 원씩 기부했다고 치자. 100만 원 가진 사람 입장에서 1만 원은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전 재산 2만 원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1만 원은 엄청나게 큰돈이다. 
과부가 드렸던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는 로마 화폐단위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돈이다. 고드란트는 앗사리온의 4분의 1이고, 앗사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의 16분의 1에 해당한다. 계산해보면 64 고드란트가 1 데나리온이 된다. 노동자 하루 품삯의 64분의 1(현재 우리나라 노동자 하루 일당이 원화로 128,000원이라고 가정하면 2천 원)은 적은 돈이지만,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여러 부자가 많이 넣었다고 하는데,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신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는 부자가 금액적으로 훨씬 많은 돈을 헌금했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이 더 많다고 하셨다. 왜일까? 그 이유는 마가복음 12장 44절에 있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4). 
예수님은 헌금의 절대 금액이 아닌 상대적인 금액 즉, 자산대비 헌금의 비율을 보신 것이다. 얼마를 드렸냐를 보신 것이 아니라 드리고 나서 얼마를 남겼느냐를 보신 것이다. 
위의 말씀에서 지나치기 쉬운 구절이 있다. 바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헌금을 모두 동전으로 바꾸어서 헌금함에 던졌다고 한다. 지폐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동전을 넣게 되면 동전끼리 부딪치면서 헌금함 바닥에 닿을 때 큰소리가 난다. 자신들의 헌금 생활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예수님은 무리가 돈을 얼마를 남기고 헌금하는지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 헌금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은밀하게 드러내지 않게 드렸는지도 보신다. 
정말 어려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고, 내가 하는 의롭고 착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헌금도, 구제도, 기도도 티 내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고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이 부모님께 정기적인 용돈과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수입이 넉넉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드릴 것이고, 재정적으로 힘이 들 때는 아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렇게 아까운 마음이 들 바에야 차라리 용돈을 안 드리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고 드리지 않는다면, 부모님은 매월 용돈을 받을 무렵 여러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런 마음이 들 때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순종하며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허락하실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돈의 중심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 원리를 깨우친다면 헌금을 드릴 때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 이주호 팀장(결혼예비학교 재정 강사)  
 
발문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돈의 중심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 원리를 깨우치면 기쁘고 즐겁게 헌금할 수 있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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