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시는 직업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목회자, 신부, 선교사 등 성직(聖職)이라고 부르는 직업 말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것과 생각이 달랐다.
직업과 소명의 관계
신약성경에서 ‘부르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칼레오(kaleo)’는 보통 믿음으로 구원 받고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가 되라는 하나님의 소환(calling)을 의미한다(롬 8:30, 고전 1:9). 또한 하나님이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려는 부르심도 포함된다(벧전 2:9).
그런데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는 고린도전서 7장 24절의 ‘부르심’이란 단어를 ‘직업’을 의미하는 독일어 ‘베루프(Beruf)’로 번역해서 소명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를 고수하던 중세교회에 도전했다. 당시 중세교회는 교회가 지상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교회를 위해 교회 안에서 행하는 직무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인정했다. 수도사와 신부, 수녀가 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흔히 이를 ‘신령한 직분’이라고 불렀으며 그 밖의 일은 천박하지만 ‘세속적 직분’으로 보았다. 그런 중세교회의 견해를 루터는 아래와 같이 공격했다.
“교회, 주교, 신부, 수도사들을 ‘신령한 직분’으로 칭하면서 왕족, 귀족, 장인, 농부들을 ‘세속적 직분’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지어낸 소리다. 철저한 기만이요, 위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거기에 주눅들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진정으로 신령한 직분을 가졌으며, 직무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세례와 함께 제사장으로 드려졌기 때문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 묵시록은 이렇게 가르친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계 5:9~10).”
이와 같은 루터의 소명에 대한 해석과 만인제사장직 주장은 당시 중세교회의 이층구조적계층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루터는 ‘독일 귀족에게 주는 글’에서 “복음을 통하여 은혜와 믿음으로 이신칭의(구원)받고 세례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 존전에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동등한 신분을 가졌다. 따라서 첫째, 성직 계층이 평신도 국가 공직자들보다 우월할 수 없고, 둘째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되며, 셋째 평신도도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포로’에서 두 가지 성례(세례, 성만찬)만을 유효한 것으로 확정하면서 평신도들까지도 세례와 성만찬을 베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했다. ‘기독자의 자유’에서는 죄와 죽음의 노예로부터 해방된 모든 평신도는 사제계층의 중재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고 지성소인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이웃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일꾼의 소명과 태도
모든 직업은 소명이고, 성직과 세속직으로 구분하는 것은 틀린 것이라는 종교개혁자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하는 것이 좋은 일꾼일까?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과정도, 수단도 선해야 한다. 성경은 일하는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첫째, 일이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창 1:26~28). 하나님은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복 주기를 원하신다. 직장인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공급하는 일꾼이다. 마치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선물할 물품을 만드는 것처럼 일한다면 그 생산물은 분명히 고객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둘째,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해야 한다. 직장인은 상사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골 3:22~4:1). 또한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는 것이 좋다(골 3:17). 예수의 이름을 걸고 일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일하면 자연히 최고의 겸손과 온유로 일하게 되고 최상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 일터에서 사람을 섬겨야 한다(막 10:42~45).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자기중심적으로 권세를 부리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러 오셨고 종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기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이같이 섬기라고 하셨다. 특히 까다로운 상사들을 만나면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넷째,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이 없으면 감동이 없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다. 희생이 없이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그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일터와 가정과 매일 만나는 이웃들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 때 리더십이 생긴다.
다섯째, 여러 사람과 협력해야 한다(고전 12:4~8). 일터는 유기적 공동체다. 여러 사람이 각자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서로 연합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천부적인 재능과 영적 은사 그리고 지식과 경험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터에 들어가면 그 일터의 목적, 가치 및 책임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탁월성을 갖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혼자 유기체를 이룰 수 없다.
여섯째,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대가 없이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일할 때는 반드시 정당한 보상을 기대한다. 하지만 때로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한다. 이때 자존심이 무척 상하고 화가 난다. 그러나 골로새서 3장 23~24절에는 주님이 주시는 보상이 있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한 일이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금전적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할지라도 주님이 보상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래 참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일터로 보냄 받은 일꾼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을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눅 4:43).
‘보내다’라는 동사의 원어는 ‘아포스텔로’이다. 이는 공식적으로 임무를 맡겨 보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본래 왕이 신하를 파견할 때 썼던 단어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자신을 보냄 받은 자로 인식하셨다는 것이다(눅 4:18, 요 3:17, 4:34, 5:24, 17:3). 이 아포스텔로의 라틴어 번역이 ‘미토(mitto)’이며, 여기서 오늘의 ‘선교(mission)’란 말이 나왔다.
이런 뜻에서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최초의 선교사라 할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가 보낸 최초의 하나님 나라 선교사가 예수님이다. 그 예수님이 이제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로 보내시며 “너희도 나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요 17:18, 20:21)고 하신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특수 임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사로서 살아가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나는 어디로 보내심을 받았나?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보냄 받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은 매우 다양하다. 그곳은 가정, 교회, 회사, 사회 또는 정부일 수 있다. 그곳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전업주부의 경우는 가정이 일터고, 전임 목회자의 경우는 교회가 일터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사람은 일터에서 일하는 일꾼이다. 따라서 나는 일터로 보냄 받은 일꾼이다. 예수님은 왜 나를 일터로 보내셨을까?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 이장로 장로(여의도공동체, 한국리더십학교장)
<발문>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최초의 선교사라 할 수 있다.
그 예수님이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 선교사로 보내며
‘너희도 나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