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은 결국 영원한 것으로만!

신앙에세이

 

김윤식 목사

▲ 김윤식 목사(여호수아공동체)

 

뜨거운 아웃리치의 계절이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이번 여름에 청년들과 함께 일본 후쿠오카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주요사역이 노방전도였기에 더위가 식은 저녁이 되면 사람들을 만나러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가봤더니 모바일 게임 ‘ 포켓몬 GO’ 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 카메라로 공원 곳곳을 비추며 화면 속에 나오는 가상의 동물들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게임에 몰두한 그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태권무도 하고, 워십댄스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소외감이 들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우리와 서로 다른 것을 찾고, 다른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비춰진 가상현실에서 기쁨을 찾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모습 속에서 우리의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한다. 쇼핑을 하면서 물건의 최저가격을 검색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 발견한 식당의 평점을 찾아보기도 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로 담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찾기 위해 실제의 감각보다 모바일의 감각에 의존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에 소비가 많아지고 정보기술과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실제가 아닌 가상의 기호와 이미지가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가치와 이미지가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동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의 소원은 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었다. 네로가 돈이 없어 볼 수 없었던 루벤스의 그림을 오늘날 우리는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심지어 명화를 내 스마트 폰에 저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가치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소유하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행복한 걸까?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보고 싶어 했던루벤스의 그림은 ‘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와 ‘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라는 그림이다. 돈이 없어 볼 수 없었던 네로는 결국 죽기 직전에야 소원을 이룬다. 네로는 유일한 친구 늙은 개 파트라슈와 함께 인생 마지막 순간에 루벤스의 명화를 보고 기뻐한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 죽는다.

우리는 왜 그토록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더 만족하기 위해 애쓰는 걸까? 현실을 넘어 가상의 무언가를 찾으면서까지 말이다. 진정한 만족이 되시는 분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심겨진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분의 때에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

우리 안에 있는 영원을 향한 갈망은 결국 영원한 것으로만 만족될 것이다. 유한한 가치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영원한 만족을 찾고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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