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의 새로운 비전

김상현5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과 구원을”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의 새로운 비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
방배동에 위치한 국대떡볶이 본사 회의실 벽면에 붙어있는 슬로건이다. 국대떡볶이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기업으로도 잘 알려진 국대떡볶이 대표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노점상에서 시작해 전국에 점포 90여 개를 만든 하나님의 사람이다.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인사하면서 명함을 건네는 모습이 참 친근했다. 국가대표 떡볶이의 준말 ‘국대떡볶이’는 2010년 이화여대 노점상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에 점포가 90개가 넘는다. 이른바 성공신화를 썼다. 김상현 대표는 2년 전 하나님을 만났다. 이재만 선교사와 함께 미국창조과학탐사를 다녀온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
김상현 대표는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 적도 있지만 선수를 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공부도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공부도, 운동도 딱 중간만큼만 했다. 대구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해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의 삶에 전환기가 찾아온 것은 전역 이후였다. 전역하고 사업을 하러 캐나다로 떠났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중개업을 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캐나다로 갔다.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꿈이었다.

 

노점에서 전국에 점포 90개로 성장!

 

스물세 살에 캐나다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신발도 팔고, 배달업도 해보고, 군고구마도 팔았다.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 어학코스도 밟고, 대학교에도 지원했다.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자신이 없어 입학을 취소했다. 외국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까지 할 열정도, 자신도 없었다. 4년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는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번번이 실패했다. 금융권에서 사업자금으로 빌린 빚만 5천만 원이 넘었다. 빚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떠올린 것이 바로 떡볶이다. 평소 좋아하고 즐겨먹던 떡볶이를 사업아이템으로 삼았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에서 사먹던 떡볶이 맛을 그대로 재현해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1년 동안 전국의 유명 떡볶이집을 찾아다녔다. 무턱대고 “떡볶이 장사를 하려는데 노하우 좀 알려 달라”고 매달렸다.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에 대구에서 떡볶이를 팔던 한 아주머니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았다.
이제는 상점을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상점을 얻을 돈이 없어서 일단 여성들이 많은 장소를 탐색해보기로 했다. 여성 소비자들을 공략하면 성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숙명여대를 거쳐 이화여대 앞까지 갔다. 그 자리에서 노점상 하는 상인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노점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호명을 결정지을 차례였다. 막상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친구가 우연히 “국가대표, 국대”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국대’ 라는 단어가 입에 착 감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붙인 이름이 바로 ‘국대떡볶이’다.
스물아홉 살 청년 김상현 대표가 이화여대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하얀색 바탕에 궁서체로 ‘국대떡볶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국가대표’의 마음으로 떡볶이를 만들고자 태극기까지 내걸었다. 자연스럽게 이화여대 앞을 오가는 여대생들과 중고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20대 패기 넘치는 청년들이 떡볶이를 파니까 손님들의 반응이 더 좋았다. 그렇게 장사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가로수길 인근에 첫 번째 점포를 열게 되었다. 하루 20~30만원이던 매상이 180~190만원으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때부터 국대떡볶이의 이름을 내걸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다

 

김상현 대표는 성공신화를 꿈꿨다. 안 읽은 자기계발서와 경영서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됐다. 난생처음이었다. 교회 다니는 것을 종교생활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다.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그를 교회에 데려간 친구가 일대일 제자양육을 받는 것을 권했다. 일대일 제자양육을 받으면서 “왜 나에게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애써 가르쳐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대가없이 잘해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회에 다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예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세례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의 재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2014년부터 CCF에서 활동하게 됐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그에게 지인이 CCF를 추천해줬다. CCF에서 예수님의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을 공부하면서 세상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의아했다.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김하중 장로의 강의도 듣고, 중보기도도 배웠다. 그렇게 신앙이 조금씩 성장했다. 그해 6월 여름방학에 ‘미국 창조과학탐사 비전트립’을 가게 됐다. 7박 8일 동안 짧으면서도 긴 여정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다른 마음을 품고 창조과학탐사에 참가한 것이다. 미국의 식당들을 둘러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창조과학탐사 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재만 선교사의 강의를 듣고, 자연을 보면서 성경에 나온 창조 이야기가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완전히 인생이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선명한지 몰라요. 진화론을 교육받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했어요. 우리가 타락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날 이후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됐다. 신앙생활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하용조 목사의 창세기 강해 설교 전집을 구매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었을 거에요.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듣고 공부했어요.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은혜가 정말 놀랍더라고요.”

 

떡볶이 선교사로 거듭나다

 

주변에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 바뀐 그의 모습을 보고 놀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을 전하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말씀도 배워야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배워서 남 주기 위해 공부하고 있어요. 전에는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남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성경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김상현 대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 이후 더 바빠졌다. 매일 아침 큐티하고, 새벽예배 나오고, 주일은 물론이고 월요일에는 월요큐티예배, 수요일은 수요예배를 드린다. 말씀과 예배가 끝이 없다. 출퇴근 길 차 안에서는 설교를 듣는다. 가맹점주나 사업상 연결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나님 오늘은 누굴 만나야 합니까?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저를 보내셨습니까? 오늘은 누구를 위로할까요?”
지난해 회사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인생의 고난을 겪으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했다. 인생의 목적과 이유를 분명하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일도 더 잘하고 싶고, 크리스천으로서 올바르게 살아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천으로서 선교의 비전을 품고 살아가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과 구원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거든요. 떡볶이가 아주 좋은 선교도구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