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복음,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길공동체, 대만 스린 링량탕교회를 가다

 

한국을 알리고, 문화를 소개하고, 복음도 전파하고

 

 

한류와 복음이 만났다. 길공동체가 대만 청년들에게 한국문화와 복음을 선물했다. 한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패션과 화장법을 전수하고, 매콤달콤한 떡볶이 맛도 보여줬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이어진 한국과 대만 청년들의 아름다운 만남을 취재했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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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공동체와 스린 링량탕교회 청년들이 스린역에서 찬양을 하고있다.

 

길공동체 한국문화 전도사들이 뭉쳤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진아 자매, 패션 디렉터 이지현 자매, 쉐프 이종찬 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이외에도 한국문화를 알리고, 복음도 전하는 숨은 보석들이 13명이나 더 있다.

길공동체 대만 아웃리치는 대만 청년들에게 한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패션과 화장법을 전수하고, 한국음식을 소개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국도 알리고, 복음도 전하자는 취지였다.

리잉시엔(29세) 자매는 한류 드라마 ‘ 태양의후예’ 를 보고 한국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한국 문화나 소식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최신유행하는 패션과 화장법을 배우고, 맛깔 나는 한국음식도 실컷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한국교회에서 한국의 패션과 화장법을 가르쳐 주고, 한국음식도 맛보게 해주는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송혜교처럼 엣지있게~”

 

“태양의 후예 송혜교처럼 화장하는 비결을 알려드릴게요. 볼터치는 환하고 엣지있게~! 눈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진하지 않게 해주세요. 여자의 변신은 무죄! 여러분도 쉽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진아 자매(길공동체)가 리잉시엔 자매에게 한국에서 최신 유행하는 화장법을 전수해줬고, 패션 디렉터 이지현 자매는 유행하는 옷을 입혀줬더니 연예인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리잉시엔 자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경험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마음이 활짝 열린 리잉시엔 자매에게 영원한 친구 예수님을 소개했다.

“당신을 그 누구보다 귀하고 예뻐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은 늘 당신을 지켜주고 계세요. 그 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리잉시엔 자매가 그렇게 예수를 만났다. 이 날은 그녀에게는 한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랍고도 특별한 날이었다.

 

 

떡볶이와 예수님

 

대만인들이 한국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고 잘 먹는지 몰랐다. 매워서 혼났지만 말이다.

“눈물이 쏙 날만큼 너무너무 매웠어요. 그런데 계속 손이 가더라고요. 달콤하고 쫄깃한 맛에 빠져들 수밖에 없더라고요.”

난생 처음 떡볶이를 맛본 대만 청년들의 공통적인 말이다. 그들은 분명 매운 맛에 혼쭐이 났지만 깊으면서도 계속 먹고 싶어지는 떡볶이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대만 청년들이 떡볶이 매력에 흠뻑 빠진 것처럼 예수님의 매력에도 완전히 빠졌으면 좋겠어요.”

쉐프 이종찬 형제는 이번 아웃리치에서 ‘ 떡볶이 전도’ 를 했다. 맛깔스러운 한국 음식도 소개하고, 예수님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대만 청년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고, 영원한 친구 예수님도 만나는 일석이조였다.

“예수를 믿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구속될 것 같은 느낌이 떡볶이의 매운맛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매운맛 보다 훨씬 달콤하고, 쫄깃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맛이 떡볶이의 진짜 매력인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도 훨씬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夜)시장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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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를 위한 캠프.

 

대만의 야(夜)시장에 길공동체 전도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혼잡하고 복잡한 야시장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외쳤다. 만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전도부채와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길공동체 전도자들의 열정은 차세대에게도 이어졌다. 차세대를 위한 여름캠프를 연 것. 여름캠프에도 한국문화가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게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팀별구호 외치기, 수건 돌리기, 물총게임, 바가지로 물풍선 옮기기, 빨대로 양파과자 옮기기, 카드 뒤집기 등 다채롭고 이색적인 게임들이 대만 어린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한국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예수님과도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한류와 복음이 만났더니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닫힌 마음을 여는 데에는 한류만한 것이 없었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이 소망을 꿈꾸게 하는 데에는 복음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한류와 복음이 만나니 이보다 좋을 순 없더라.

 

 

대만의 기독교 역사

 

“다시 부흥을 꿈꾼다”

 

1590년 포르투갈인에 의해 대만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전파됐다. 이후 1627년 5월 4일 네덜란드 선교사 조지 칸디디우스(Georgeius Candidius)가 대만의 남쪽 대남(臺南)지역을 중심으로 선교를 시작했다. 당시 네덜란드 선교사들은 세금징수, 영업허가증 발급, 식민지 관리 등 식민통치와 관련된 행정업무를 주로 했다. 정치와 종교의 목적을 가진 네덜란드 선교사들에게 대만인들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1860년 9월, 더글라스(Carstairs Douglas)와 맥켄지(H.L.Mackenzie) 선교사가 대만선교 탐사를 다녀온 이후 1865년 5월 28일 영국장로회가 맥스웰(Dr. James L Maxwell) 선교사와 장로 3명을 파송했다. 그해 6월 16일부터 대만에서의 공식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 날을 선교기념일로 지정하고 지키고 있다. 맥스웰 선교사는 대만에 성경책을 전하고, 의료 및 문서선교에 상당한 공헌을 세웠다.

대만 북부 지역에는 복음이 조금 늦게 전해졌다. 캐나다장로회 소속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 선교사가 복음을 전했다. 그는 1872년 3월 7일 단수이(淡水) 지역에서 목동들과 함께 대만어를 배우면서 선교했다. 설교, 교육, 치과진료 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만에서 29년 동안 선교하면서 적어도 4만개 이상의 치아를 뺐다. 맥케이 선교사를 통해 대만 북부지역에 60여 개의 교회와 옥스퍼드 중학교, 신학교, 맥케이 기념병원 등이 세워졌다.

대만은 1895년부터 1905년까지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겪었다. 일본정부는 대만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었는데 당시 대만교회가 부흥을 경험했다. 하지만 1931년부터 황민화 정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또 다시 쇠퇴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대만의 기독교는 전무후무한 발전을 이뤘다. 해방 전후 3만7천 명이던 대만의 기독교 인구가 1960년에는 38만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960년대 경제성장 이후 다시 시들해졌다가 1990년대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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