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Cook)보디아, 주님과 함께 식사합시다!”

Pole2공동체, 허기진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몸도 영혼도 허기진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함께 복음을 전한 Pole2공동체 캄보디아 아웃리치에 동행했다. 맛있는 음식 먹고 회복되고, 하나님 말씀 듣고 치유되는 기적의 현장을 목도했다. “쿡(Cook)보디아, 주님과 함께 식사합시다!”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5박7일 동안의 아름다운 여행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 이소정 기자 s2868@onnuri.org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밥을 먹는 아이들

▲ 캄보디아 아이들이 쿡보디아팀이 나눠준 ‘커리놈빵’을 먹으며 해맑게 웃고 있다.

 

비행기 창문 사이로 내리쬐는 강한 햇볕이 이곳이 캄보디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국토가 남한의 약 1.4배나 된다. 남쪽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 중앙에는 넓은 평원이 전개되어 있다. 마치 얕은 대접 모양의 지형이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로 유명하다. 9세기 자야바르만 2세가 주변 소국들을 정복한 뒤 앙코르를 수도로 왕조를 세웠다. 그것이 크메르 제국의 시작이다. 앙코르와트와 같은 유적들도 이 시기 군주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캄보디아는 1431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다 태국의 침략을 받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태국과 베트남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왕국의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정도였다. 1864년 태국과 베트남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에 도움을 청했고, 그때부터 통치권이 프랑스로 넘어갔다. 오랫동안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먹고 살만한 나라였다. 그러나 1975년 공산주의 단체 ‘폴 포트’에 의해 전체 인구의 1/3(200만 여명)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학살 피해자들은 대부분 지식인들이었다. 그 여파로 캄보디아에는 고급인력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대학살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뒤처진 나라가 되었다. 1987년에는 1인당 GDP가 18달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후퇴했다. 지금까지도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먹고, 마시고, 가르치고, 예배드리고

 

오랜 시간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해 몸도, 마음도, 영혼도 허기진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따뜻한 반 한 끼 대접하기 위해 온누리교회  Pole2공동체가 뭉쳤다. “쿡(Cook)보디아, 주님과 함께 식사합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허기진 그들의 영육을 채워줬다. ‘쿡(Cook)보디아’는 요리하다(Cook)와 캄보디아(Cambodia)를 합친 단어다.
캄보디아에서 7년 째 ‘먹이는 사역’을 하고 있는 S선교사와 그의 제자 A자매가 Pole2공동체 아웃리치 적극적으로 도왔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을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던지 첫 만남부터 훈훈했다. 마치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S선교사가 사역하는 센터까지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창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매우 혼잡했다. 낡은 오토바이와 자동차, 씨클로가 뒤섞여 위태롭게 달리고 있었다. 뿌연 먼지도 자욱했다. 흙먼지를 뚫고 달려 S선교사가 사역하는 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S선교사가 영육이 허기진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음식과 말씀을 먹이는 장소다. 먹이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 현지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매주 주일 제자 20명과 함께 예배도 드린다. 먹고, 마시고, 가르치고, 예배드리는 주님의 집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S선교사가 이곳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한 명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일예배에 학생들을 초대했는데 한명도 오지 않더라고요. 왜 오지 않는지를 물었더니 주일에 일하면 25달러를 벌 수 있는데 어떻게 그곳에 가냐고 되묻는 아이에게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그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복음을 전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끝에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예배에 오는 학생들에게 25달러씩 장학금을 줬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물질을 허락해 주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어려운 기도제목을 즉시 응답해주셨다. 지금도 장학금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S선교사가 깨달은 것이 있다.
“복음과 음식은 같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배가 고프면 복음이 들어갈 힘이 없거든요. 배가 고픈데 누가 복음을 듣겠어요. 그래서 저는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서 꼭 식사를 함께해요. 그 한 끼가 가장 좋은 전도방법이에요.”
단순히 먹이는 것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S선교사가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는 것이 있다. 공부다. S선교사는 제자들이 캄보디아 교육을 책임지는 리더로 성장하는 비전으로 품고 있다. 제자들이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해서 선한영향력을 끼친다면 캄보디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을 때 가장 먼저 교육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제자 중에서도 A자매가 유난히 눈에 띄고, 애착이 간다.
“A자매를 처음 봤을 때 꼭 저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더라고요. 조금만 다듬어주고, 도와주면 잘 자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따라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A자매는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S선교사 센터에서 영어반을 맡고 있다. 신앙도 나날이 성장했다. 불교신자였던 A자매는 늘 세상에 왜 이렇게 신이 많은 궁금했다. S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그 궁금증을 해소했다. 스스로 성경을 읽으면서 더 명확해졌다. 믿음도 확고해지고, 신앙심이 깊어졌다.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A 자매의 가족들은 그녀가 집에 오면 “예수 왔네”라고 말한다고 한다. A자매는 지금 한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수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에 서류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S선교사는 A자매가 한국의 크리스천 교수님들 밑에서 지식과 영성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언어, 국경, 종교, 문화의 벽을 허물고

 

세족식에서 감동받은 H친구

▲ H자매가 세족식 중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국 가자”
S선교사가 제자들을 예배로 초청하는 말이다. 하나 둘 예배자리로 모인 제자들이 벌써 20여 명이나 된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S선교사의 제자들을 축복하기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그 식사자리에 제자 21명이 왔다. S선교사가 꼭 소개하고 싶다던 F형제도 왔다. F형제는 요즘 학교 일이 바쁘다며 예배와 모임에 참석이 뜸했다. S선교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F형제의 신앙이 다시 한 번 뜨거워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그들에게 근사한 밥 한 끼를 대접했다. 스프와 빵으로 입맛을 돋우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스테이크를 내놓았다. 스테이크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데 한 제자가 스테이크를 받고도 먹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S선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먹어야하나요?”
그들에게 스테이크는 흔한 음식이 아니다. 일류 레스토랑에서 파는 비싼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값진 음식임이 분명했다.
만찬을 마치고 그들을 위해 준비한 또 하나의 감동을 선물했다. 세족식이었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정성껏 S선교사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기도해줬다. H자매와 I자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발을 가장 하찮고 더러운 것으로 여긴다.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의 모습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녀들의 눈물이 언어, 국경, 종교, 문화의 벽을 허물었다.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해졌다.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주님 품으로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다

▲ 쿡보디아 팀이 캄보디아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에게 또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바로 S선교사 제자들의 믿지 않는 친구들을 초청해 밥을 먹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학생들을 위한 전도축제를 열었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어떤 음식을 대접할지 고민부터 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면서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메뉴를 선정했다. 하루 1달러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오리알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하는 그들에게 정말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메뉴는 소불고기, 제육볶음, 닭볶음면이었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내놓자마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쌀 한 톨도 남지 않았다.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 뒤에는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의 콘서트가 막 올랐다. A자매의 간증도 이어졌다. 친구들 앞에서 담대하게 간증하는 A자매의 모습이 마치 사도 바울 같았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과 S선교사의 제자들이 손을 맞잡고 합심기도도 했다. 그 기도가 곧바로 응답됐다. 친구 따라왔다는 B형제가 반나절 만에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처음에는 저 사람들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묻다가 나중에는 언제 다시 오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예수님이 궁금하다고 자신도 만나고 싶다고 고백했다. C자매는 평소 예수님에 대해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나눠주면서 좋아할 수 있어요?”
D형제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다가 최근 들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을 만나면서 신앙을 회복하기로 마음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을 뿐인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주님 품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

 

율동을 따라하는 캄보디아 아이

▲ 캄보디아아이들이 즐겁게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프놈펜에서 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GK마을에 도착했다. 한적한 마을에 노랑, 파랑, 분홍으로 칠해진 집들이 참 예뻤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어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웅변해주는 것 같았다. 이 마을은 쓰레기 마을로 불리던 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옮겨온 곳이다. 쓰레기를 주우며 생활을 연명하던 사람들이 현지인 C목사를 만나면서 변화되고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 과정에서 영육간의 상처와 아픔도 치유됐다.
이 마을에 사는 K할머니는 54세에 이웃사람에게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만났다. 그런데 사위가 하나님 믿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마을을 전전하며 지내게 됐지만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던 그녀가 C목사를 만나서 이곳으로 오게 됐다. C목사는 토요일마다 GK마을을 방문해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있다. 이곳에 사는 30가정 중에 10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 마을이 조금씩 복음화 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달라졌다. 공장과 식당을 찾아가 생산적인 일을 시작했다.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자립심이 생긴 것이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GK마을 주민들을 응원하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선물하기로 했다.  S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센터에서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 음식이 도착하지 못한 것.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율동하고, 찬양하며 기다렸다. 아이들은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의 작은 몸짓 하나도 따라했다. 그 모습을 본 한 아주머니가 탬버린 같이 생긴 악기를 들고 나와 신나게 흔들었다. 절로 흥이 났다. 집 안에 있던 할머니도 흥겨운 소리를 듣고 문지방에 앉아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음식이 왔다. ‘커리놈빵’이었다. 카레를 넣은 닭고기국에 빵을 찍어먹는 캄보디아 요리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따뜻한 커리놈빵을 한명이라도 더 나누어주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한 아이는 순식간에 해치우고 또 받아먹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왔다. 배시시 웃으며 국그릇을 내미는 아이의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그 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여러 차례 음식을 받아 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퍼주고 또 퍼줘도 솥에 국이 줄지 않았다. 배식하던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원이 이렇게 말했다.
“어, 아직도 많이 남았네.”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도 남았다.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닌가.

 

 

‘하하호호’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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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쿡보디아팀이 T마을에서 마을 아이들과 다함께 춤추고 있다.

 

하늘이 흐렸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캄보디아 시내를 지나 L청소년 센터를 방문했다. L 청소년 센터는 우리나라 보육원과 같다. 그곳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거나 부모가 없다. 외로움 때문일까. 그 아이들은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을 거부하지도 반기지도 않았다. 흐린 날씨처럼 그들의 마음도 흐렸다. 청소년 센터 아이들과 쿡보디아팀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잔뜩 흐린 날씨 탓에 하늘이 더욱 어두웠다. 그러고 십 여분 쯤 흘렀을까. 밥 위로 물줄기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식판을 들고 급히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비가 상상도 못한 천국잔치를 벌이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비가 와서 밖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심심해진 한 아이가 Pole2공동체 쿡보디아 팀원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함께 춤 춰요.”
그렇게 시작된 춤판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함께 춤추며 하나 되었다. 약 1시간을 음악에 맞춰 서로의 손을 잡고 돌면서 춤을 췄다. 청소년 센터 아이들과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아이들의 마음이 함께 춤을 추면서 활짝 열렸다.
전날 밤 춤판의 감동은 다음날 사역지인 T마을까지 이어졌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눈만 마주치면 신나게 율동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흥겨워했다. 맑은 하늘 아래 큰 나무 밑에서 함께 어우러져 찬양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에덴동산 같았다. 무엇이든지 풍족하다는 뜻을 가진 마을이름처럼 그들의 마음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풍족해졌다.
Pole2공동체 쿡보디아팀은 주님이 바라보는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음식을 나누고, 복음을 전했다.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 되었다. “주님과 함께 식사합시다!”를 외치면서 말이다.

 

 

캄보디아의 기독교 역사

 

“부흥, 위기, 회복”

 

캄보디아에는 숨겨진 그리스도인이 많다. 그만큼 종교성이 높은 곳이다. 18세기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될 당시 한국인들의 종교성과 많이 닮아있다. 캄보디아에 복음이 처음 전해진 것은 1923년이다. 미국 아더 헤먼드 목사와 그의 부인이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프놈펜에 도착하자마자 성경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1934년에는 신약성경을, 1940년에는 모든 성경번역을 완료했다. 그렇게 번역된 성경을 반포해 1965년까지 2천여 명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1975년 4월 17일 공산군 폴 포트가 프놈펜에 입성하면서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폴 포트 정권은 크리스천이나 승려, 정치인, 지식인과 교사 등 누구든지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인사들을 학살했다. 사찰과 교회를 파괴하고, 도서관의 책들을 찢어 담배마는 종이로 사용했다. 당시 Ellison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교계 지도자나 목사 33명 중 27명이 굶어서 순교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캄보디아 기독교인 중 90%가 순교 당했고, 교회도 폐쇄되었다.
베트남의 도움을 받아 폴 포트 정권을 몰아냈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표현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많은 성도들이 태국과 베트남 국경에 있는 난민촌으로 피신하였고, 그곳에서 어렵게 신앙을 이어갔다. 살아남은 캄보디아 기독교인 200여 명이 프놈펜의 옛 시장에 모여 지하교회를 시작했다. WCC의 Jean Clavaud 목사가 캄보디아에 성경책을 밀반입해서 프놈펜 교회지도자들에게 전해줬다.
1990년 4월 9일 캄보디아 정부가 교회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993년 9월 노로돔 시하누크가 왕위에 오르면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 헌법을 제정했다. 국교인 불교에 더하여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종교로 인정했다. 그러자 난민들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곳곳에 교회가 개척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의 기독교는 지금 회복의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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