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용기와 희망이 싹트는 일만 남았다

한 평생 잊지 못할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 선물

 

지난 14일 새벽 6시 인천국제공항. 수많은 인파 속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바로 23인의 영등포구로공동체 아웃리치 팀원들이다. 필리핀 빈민촌 사람들에게 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러 가는 그들과 동행했다.

 

DSC03288

▲ 평생 처음으로 수영장에 놀러간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4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필리핀에 도착했다. 세부, 보라카이, 마닐라시티 등 휴양지와 관광지로 유명한 필리핀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다. 북쪽으로 대만, 서쪽으로 베트남, 남서쪽으로 말레이시아, 남쪽으로 인도네시아가 있다. 연평균 기온이 25~29도 정도로 일 년 내내 고온다습하다. 이러한 기후 때문에 삼모작이 가능하다.

 

아시아의 부국(富國)에서 최빈국으로

 

필리핀은 여타 동남아국가들과 달리 가톨릭 국가다. 현지어 타갈로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면에 굴곡진 역사가 있다. 필리핀은 오랫동안 외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스페인 왕실의 지원으로 세계 일주에 나선 포르투갈의 항해사 마젤란이 1521년 필리핀 사마르 섬에 상륙하면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수차례 원정 끝에 1571년 필리핀을 완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스페인 국왕(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명칭을 필리핀으로 명명하고 327년 동안 지배했다. 이후 미국(1898~1941년)과 일본(1942~1945년)의 식민지배를 거쳐 1946년 독립했다.

세계 3대 해변으로 불리는 보라카이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필리피노(필리핀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대형 쇼핑몰과 고급 리조트, 그림 같은 풍경을 향유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의 상류층들이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아주 가난한 나라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파병을 할 정도로 아시아의 강대국이었고,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제정한 ‘막사이사이’ 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배출한 나라였다. 그런 필리핀이 독재자 마르코스의 21년 동안(1965~1986년) 이어진 부정부패로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지 선교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필리핀은 19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했던 나라였다고 한다. 1966년 동남아 순시(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필리핀)를 계획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방문 불가를 통보했다. 표면적 이유는 당시 지도자였던 마르코스가 시간이 없어서였지만 실제 이유는 거지나라에서 구걸하러 올 것이 뻔해서였다. 대노한 박 대통령이 “너희들이 얼마나 우리보다 더 잘 사나 두고 보자”고 이를 갈았다고 한다. 196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해보면 필리핀 270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절반도 못 미치는 92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70년 역전한다. 필리핀의 GDP수치를 뛰어넘은 한국은 이후 계속해서 경제 발전해 1980년대에 들어서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지도자의 부정부패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다. 21년 동안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마르코스가 엄청난 돈을 빼돌리고 사치를 저지르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아시아에서 최악으로 손꼽히는 독재자로 인해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그가 몰락할 당시 필리핀의 상위 10%가 필리핀 하위 60%만큼의 소득을 벌어들일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했다. 현재는 10%의 상류층, 약간의 서민층, 그리고 80% 가까이가 빈민층이다.

 

‘하나님의벗교회’와 정광훈 선교사

 

영등포구로공동체 필리핀 아웃리치는 가난으로 신음하고 있는 필리피노들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 더운 나라에 살면서 돈이 없어 수영장 한번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방법이었다. 한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예수의 사랑을 함께 전하는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사역하고 있는 하나님의벗교회 정광훈 선교사와 성도들이 반갑게 맞아줬다. 마닐라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2시간을 더 달려 정광훈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 케손시티’ 라는 곳인데 필리핀 제2의 도시다.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의 행색도 허름했다. 도로 한복판에는 손에 걸레를 든 아이들이 보였다. 차가 정체되면 사이드미러를 닦아주고 푼돈을 받는 동냥꾼들이었다.

“눈에 초점이 없죠? 길거리 아이들의 대부분이 본드를 하면서 구걸하고 있어요.”

선교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기껏해야 7~8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이 고아거나, 부모조차 노숙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광훈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하나님의벗교회에 도착했다. 하나님의벗교회는 2004년 정광훈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필리핀 선교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필리핀 빈민촌에 한인교회를 세우려던 생각도 없었다. 그는 원래 경찰이었다. 바쁜 업무 때문에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어 수년 동안 고민하다 늦은 나이에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아내 김경순 사모가 반대한 것은 당연지사. 이혼까지 불사하겠다고 반대하던 아내가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이 생각나 남편의 결심을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죠.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떤 곳으로라도 갈 테니까 동생을 살려달라고요. 그 기도를 하나님이 흘려버리지 않으셨어요.”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회지를 찾던 정 선교사는 우연히 필리핀 관련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목사를 청빙한다는 광고를 봤는데 자신이 가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해서 문의했더니 15일 안에 필리핀으로 와야 한다고 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옷가지만 챙겨 2002년 필리핀으로 갔다. 낯설고 물선 땅에서 고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호되게 훈련받았다. 온 몸이 젖을 정도로 울면서 기도하고 버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2004년 세들어 살던 집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8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20명, 30명, 150명, 200명까지 불어났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성도들에게 밥을 해줬는데 그것이 빈민촌 사람들에게 소문이 난 것이다. 정 선교사는 날마다 늘어나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한 예배당이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한국의 어느 대법원장이 교회를 지으라며 유산으로 1천 만 원을 남긴 것. 그 비용으로 예배당 건축비용을 마련하게 됐다.

교회 부지를 찾으러 다녔다.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발품 팔던 어느 날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피한 곳이 지금의 교회다. 연세가 많은 여자 목사님이 간신히 운영하고 있던 허름한 교회였다. 그 목사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다가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갔더니 환영해 주었다. 교회를 이양하겠다는 서류에 사인도 해줬다. 그렇게 2004년 3월 빈민가에 위치한 유일한 교회가 만들어졌다.

빈민촌 한가운데 있는 교회는 경계나 위험이 많았다. 지금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사역하고 있는 실정이다. 12년 전 교회를 흔쾌히 이양해 준 연세 많은 여자 목사님이 지난해에 소천했는데 그 이후로 자녀들이 협박하고 있다. “여기서 계속 사역하면 총 맞을 수 있으니 어서 떠나라”고 위협하고, 힘없고 무지한 필리피노 교인들에게 “이 교회에서 나가지 않으면 지금 사는 집에서 쫓겨날 줄 알라”고 협박도 한다.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협박에 못 이겨 교회를 떠난 교인도 30여 명이나 된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절실합니다.”

 

말은 안 통하지만 마음이 통했다

 

선물받고 좋아하는 모습

▲ 옷을 선물받고 기뻐하는 어린이.

 

짐 풀 새도 없이 정 선교사는 아웃리치팀을 하나님의벗교회 구역예배 장소로 인도했다. 교회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떨어진 또 다른 빈민촌이었다. 필리핀 빈민촌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허름하고, 조악하다.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이 다인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60~70년대 우리나라 산동네 주택도 이보단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위험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그런데도 그곳에 사는 아이들과 주민들의 표정이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었다.

낯선 이방인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해맑게 웃는 아이들 천지였다.

구역예배 장소에는 일찍부터 몰려든 주민들과 아이들이 가득했다.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마음이 통했다. 그들과 함께 서로의 언어로 찬양을 부르고, 축복기도하며 교감했다. 덥고, 습하고, 좁고, 비위생적인 곳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어 불편할 법도 한데 누구하나 힘들어 하지 않았다. 아웃리치 팀원들의 눈에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이 가득했다. 황민 형제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있었다. 그는 광야교회 성도다. 광야교회는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을 섬기고 있다. 영등포구로공동체의 1다락방1사역지이기도 하다.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를 환영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그들을 보는 순간 광야교회 지체들이 생각났거든요.”

 

평균 키 150cm‘아에타족’을 만나다

 

DSC03025

▲ 아에타족 어린이 손을 잡고 중보기도하고 있다.

 

영등포구로 아웃리치팀의 두 번째 일정은 ‘ 아에타족’ 방문이었다. 케손시티에서 자동차로 쉼 없이 3시간을 달려, 한인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앙헬레스에서도 더 들어간 푸닝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 산기슭에 아에타족이 살고 있었다. 아에타족은 필리핀의 소수민족이다. 평균 키가 150cm에 못 미치는 왜소 흑인종이다. 키가 작아서일까. 그들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다. 여타 빈민가의 사람들보다 더 빈곤하고 열악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도 정말 순박했다. 외지인을 보고 경계할만한데 햇살보다 더 환한 미소로 맞아줬다.

이 마을교회에 아에타족이 모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 진동하는 땀 냄새가 코끝을 찔러댔지만 영등포구로공동체 아웃리치 팀원들은 그들을 일일이 껴안고 축복기도를 해줬다. 그 포옹은 최하층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의 가혹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했고, 아에타족 아이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무사히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도 담겨 있었다.

드디어 이번 아웃리치의 하이라이트인 수영장 가는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수영장에 가려고 모인 사람들이 250명이나 된다. 수영장 가는데 예쁜 옷을 차려입고, 곱게 화장도 했다. 소풍가는 것처럼 손에는 간식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영장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벌어진 진풍경이다. 수영장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물놀이

 

DSC03504

▲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

 

수영장에 도착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에게 수영복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물속을 유영하는 돌고래 같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나님의벗교회 한 성도는 “온누리교회가 아니었으면 그들은 평생 수영장 근처에도 못 갔을 거에요. 온누리교회가 정말 큰일을 한 거에요”라며 감사해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 수영장 입장료가 어린이는 330페소, 어른은 360페소다.

필리핀에서 성인여자의 하루 일당이 300페소 미만이고, 성인 남자는 잘해야 500페소 정도라고 한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들에게 수영장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 더운 나라에 살면서도 말이다. 영등포구로공동체에게는 단 하루 섬김이지만 그들에게는 평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물놀이다. 그만큼 소중한 추억을 선사한 것이다.

아웃리치 마지막 일정은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드린 주일예배였다. 만난 지 얼마 안됐지만 벌써 정이 들었나보다. 수영장에서 본 얼굴을 또 보니 남 같지 않고 정겨웠다.

연합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벗교회 예배당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영등포구로공동체 아웃리치팀이 필리핀어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이라고 찬양을 부르자, 흥 많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필리피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흥겨운 천국잔치 한마당이 되었다.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나누고, 축복하고, 껴안으며 하나가 되었다.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난의 굴레가 언제 벗겨질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 지금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영등포구로공동체가 그들을 위해 준비해 간 선물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이다. 이제 그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싹트는 일만 남았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선교사가 보낸 감사 편지

 

정광훈,김경순 선교사

▲ 정광훈, 김경순 선교사(필리핀 하나님의벗교회)

 

“여러분은 천사들입니다”

 

필리핀은 선교가 절실한 곳입니다. 이곳의 종교들은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구제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받는 것에만 익숙해지고 주는 것에는 인색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이들에게 국가관이나 사회성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도와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1,5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돌봐왔습니다. 정말 내 자식처럼 살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흔들려는 사람들의 위협도 있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용기를 북돋워주는 하나님과 영등포구로공동체처럼 귀한 동역자들 덕분입니다.

팍팍한 삶을 사는 필리피노들에게 평생 간직할 추억과 선물을 주신 영등포구로 아웃리치팀원들은 모두 천사들입니다. 귀한 아웃리치팀과 함께 하면서 저도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단기선교를 다녀갔습니다. 이번 온누리교회 영등포구로공동체 아웃리치팀은 인원이 아주 많았던 것도 아니고, 연령대가 어린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역을 하다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선교팀을 보내주셔서 용기와 도전을 주십니다. 오지까지 와주신 영등포구로공동체 아웃리치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까지, 머무르라 하면 머물고, 가라하면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와 힘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