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율법을 어긴 유대인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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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율법을 어긴 유대인의 죄

 2022-06-25      제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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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어긴 유대인의 죄 
 
로마서 2:12~29
/ 박종길 목사 
 
하나님 믿기를 거부하고 노골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남들보다 선행을 많이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들 역시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은밀한 죄도 심판하십니다. 로마서는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율법 없이 죄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한다면 비록 그에게는 율법이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의 요구가 자기 마음에 기록돼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것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12~15절). 
율법 없이 죄짓는 사람은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심판의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은 양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을 통해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받은 사람에게는 율법으로, 율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본성과 양심을 따라 심판합니다. 율법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합니다.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의 문제
 
“이런 일은 내가 전한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그날에 일어날 것입니다”(16절). 
‘은밀하다’는 것은 비밀스러운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 죄를 의미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죄까지 심판하십니다.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일으킨 동기와 사고와 생각까지 심판하십니다. 최후 심판의 날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최후의 심판 앞에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양심도, 율법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근거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하다는 사실과 그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대는 자칭 유대 사람이라 하고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할 줄 압니다”(17~18절). 
바울은 이방인들도 죄인이고, 선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설명합니다. 유대인들 역시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특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다’는 ‘찬양하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부심이 굉장했습니다. 특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소유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할 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올바른 기준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구별하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종교적인 특권에 집착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종교적인 의무에는 태만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는 있지만, 그들의 내면은 더 가증스럽고, 더럽고, 추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뜻도 알았지만,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했지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은혜와 축복은 소망하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찬양과 경배는 소홀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스스로 눈먼 사람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그대가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교훈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19~20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율법과 선택을 받았고, 선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특권을 자랑했습니다. 자신들이 길 잃은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한다고 생각하고, 어둠 속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많은 사랑과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특권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이방인들과 구별하며 무시하고, 자신들을 높였습니다. 자신들이 율법의 지식과 진리에 통달했다고 착각하고, 거기에 합당한 의무와 책임은 지지 않고 행하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는 예외가 없다 
 
“그렇다면 남을 가르치는 그대가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그대가 왜 도둑질합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그대가 왜 간음합니까? 우상이라면 질색하는 그대가 왜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율법을 자랑하는 그대가 왜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기록되기를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해 이방 사람들 사이에서 모욕을 당하는구나’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21~24절). 
바울은 아주 강하게 유대인들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이 율법은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면서 자기는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간음하고, 우상이라면 질색하면서 이방인 신전에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도둑질하고, 율법을 자랑하면서 어기는 행동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가르치는 일에는 열심이면서 자신을 가르치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에게는 굉장한 기대와 비판과 엄격한 수준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지나친 관용과 너그러움을 적용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엄격하십니다. 드러나는 죄든, 감춰진 죄든, 종교적인 전문가든, 믿은 지 얼마 안 되었든 하나님은 죄에 대해 엄격하시고,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 모욕을 받는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강대국에 의해서 포로가 되고, 무참히 짓밟히는 불행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둑질하고, 간음하지 말라면서 자신들은 간음하고, 우상을 섬겼던 옛 습관을 끊지 못하는 것을 믿음 없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습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욕을 먹는 것처럼, 예수 믿는 크리스천으로 인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욕을 먹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율법을 어기면 그대의 할례는 무할례와 같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요구를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가 할례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본래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 율법의 조문과 할례를 소유하고도 율법을 어기는 그대를 심판하지 않겠습니까? 겉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참유대 사람이 아니고 몸에 받은 할례가 참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사람이 유대 사람이라야 참유대 사람이며 문자화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은 할례가 참할례입니다. 그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옵니다”(25~29절). 
바울은 할례 자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할례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할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표시하는 아주 중요한 종교적 상징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에서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받아도 율법을 어기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반면 이방인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율법을 따라 지킨다면 할례자로 여겨진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참 유대 사람이 아니고,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중요하고, 할례가 아니라 율법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례라는 종교적인 상징이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는 것이나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이나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갈 5:6).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직분이나 상징이 아니라 내면의 믿음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삶을 삽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성도답게,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살지 않는다면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우리 삶이 신앙을 아름답게 드러내지 못한다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상징과 직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교성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참된 구원은 유대인이냐, 할례를 받았느냐, 직분이 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답게 온전한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구원은 문자나 상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길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된 축복과 칭찬은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축복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에 구원이 있습니다. 많은 특권을 가졌으면 책임도 많이 요구됩니다. 유대인도 죄인입니다. 이방인도 죄인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과 사랑,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성도답게 자리를 지키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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