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주일강단

주일강단-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2019-02-03      제1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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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욥기 42:1~6 
이재훈 목사 
 
 
16세기 수도사 가운데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 테레사와 함께 당시 부패한 수도원을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분입니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 원하여 이름을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고 바꿨습니다. 1577년 수도원 개혁에 반대하는 수도사들에 의하여 11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되고 맙니다. 가느다란 빛 하나 없는 방,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갇혀 있던 11개월 동안 그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시를 썼습니다. 자신의 고난이 얼마나 힘든 지를 고백하는 글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만난 하나님이 어두운 체험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정결케 했는지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 고백의 내용을 해설하여 나온 책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다>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의 영적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둠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가시는 방법이 우리에게 어두운 밤을 허락하시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랍니다. 밝은 빛 가운데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난을 통해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 같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고, 내 기도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것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88편 고라 자손의 시를 통해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체험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몇 구절만 읽어보겠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 처하게 될 때
“내가 저 아래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처럼 여겨지고 힘없는 사람 같으며죽은 사람처럼 버려져 무덤 속에 누운 사람, 곧 주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주의 손에서 끊어져 버린 사람 같습니다. 주께서 나를 가장 깊은 구덩이 속에, 어둠 속에, 깊은 곳에 두셨습니다”(4~6절). 
“여호와여, 왜 나를 던져 버리십니까? 왜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십니까?”(14절). 
“주께서 내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게서 빼앗아 가시니 어둠만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됐습니다”(18절). 
고라 자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깊은 구덩이 속에, 어둠 속에, 깊은 곳에 두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어둠만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한 단계 더 깊고 견고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합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이러한 영혼의 깊은 밤이라는 시험을 겪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어둠을 허락하시지 않고 믿음을 더욱 강건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어둠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의 사람들은 깊은 구덩이에 떨어진 것 같은 고난 속에서 오히려 믿음이 무엇인가를 발견합니다. 깊은 어둠 속에 처하게 될 때 우리 믿음이 진정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이 예화를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가봐야 자신의 차의 전조등이 켜져 있는지, 켜져 있지 않은지를 알게 된다.” 
빛이 환한 길을 갈 때는 전조증이 켜져 있는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좁은 길, 어두운 길로 들어서면 자신의 차의 전조등이 꺼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욥의 첫 번째 고난과 승리
 
 
구약의 욥이라는 인물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겪었던 육체적 고난 자체가 그를 어렵게 한 것보다 고난이 해석되지 않을 때 그 영혼에 임했던 어두운 밤이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 어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고난이 해석되지 않을 때 영혼에 깊은 어두운 밤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사탄이 그를 고소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받은 것을 제거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고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공격을 잠시 허용하셨습니다. 욥을 시험대에 올리셨습니다. 
욥의 고난은 세 단계를 거쳐서 나타납니다. 첫째, 단 하루 만에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오랫동안 누려왔던 풍족한 모든 소유, 심지어 자녀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그의 소, 나귀, 종들은 스바 사람들이 공격해서 빼앗아가고 죽였습니다. 낙타와 종들은 갈대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광야에서 돌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이 상실의 고난이 여유를 주지 않고 연속적으로 임했습니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이 고난 앞에서 욥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이 말에 욥은 벌떡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 버리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내 어머니의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떠날 때도 벌거벗고 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여호와께서 가져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 1:20~22). 
놀라운 믿음입니다. 최고의 복된 상태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해버렸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찬양했습니다. 욥이 진정 믿음의 사람임이 고난을 통해 증명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을 상실해 봐야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건강을 잃으면 건강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관계를 잃을 때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잃어버릴 때 그 축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고, 그 축복의 근원의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욥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믿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모든 것을 상실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놀라운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 앞에서도…
 
 
어떤 사람이든지 첫 번째 단계 시험에서 대부분 쓰러집니다. 욥은 두 번째 단계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욥에게 가장 혹독한 질병이 임했습니다. 그의 온몸에 악성 종기가 돋아난 것입니다. 놀랍게도 욥은 이 단계 고난도 이겨냅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가 쓰러집니다. 욥의 아내의 인내심은 이 공격과 고난 앞에 꺾입니다. 욥의 아내가 욥에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그 잘난 충성심이나 붙들고 있다니!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욥 2:9).  
남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하는 것은 아내는 이미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욥이 이 고난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러나 그가 아내에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군. 그래,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것만 받고 고난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입술로 죄 짓지 않았습니다”(욥 2:10). 
욥은 아내의 어리석은 하나님께 대한 저주를 책망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1단계 상실의 시험, 2단계 건강의 시험 앞에서도 욥의 믿음은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의 시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욥,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며…
세 번째 시험은 고난이 오랜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 자체가 시험입니다. 순간적인 고난은 그나마 견디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고난, 계속적인 고통, 회복의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계속 고통을 견디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의 시험을 거치면서 욥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게 됩니다. 1단계, 2단계 시험은 견뎠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고난의 상태가 지속되면서 욥이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온 지 7일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한숨, 한탄, 자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한 마디씩 하면서부터 더 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위로하러 오는 사람이 없을 때는 차라리 침묵하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욥의 고난에 대해서 해석해주고 위로한다면서 했던 친구들의 말이 욥을 어둠에 빠뜨렸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너를 고난에 처하게 하실 리가 없다.” 
친구들은 인과응보 법칙을 적용했습니다. “네가 무슨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주신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잘 찾아봐라”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실만한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큰 고난을 받을만한 죄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살아계신 것일까?’라는 의심이었습니다. 욥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고백을 한 구절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결단코 자네들이 옳다고 말하지 않겠네. 내가 죽을 때까지 나의 온전함을 포기하지 않겠네. 내가 나의 의로움을 굽히지 않을 것이고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마음이 나를 원망하지 않을 걸세”(욥 27:5~6).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결국 욥은 친구들을 침묵시킵니다. 친구들은 욥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엘리후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기 전까지 세례 요한의 역할을 했습니다. 엘리후는 네 번에 걸쳐 욥에게 교훈을 줬습니다. 비록 고난 속에 처해 있지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직후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피조물 된 인간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심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욥의 영혼에 임하면서 드디어 42장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며 체험하고 고백한 내용이 나옵니다. 욥기의 결론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욥에게 임한 후에 깨달은 것, 욥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며 깨달은 유익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이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둠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첫째, 욥은 하나님께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게 하시면서 자신을 가장 수동적인 상태로 만들어 놓고 일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주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 이루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을 가린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말하고 너무 기이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내가 내뱉었습니다”(2~3절).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다 알 수 있습니까? 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으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다 깨달을 수 있으면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우리의 한없는 무지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지함과 무능함은 어둠 속에 있을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둠은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사람들이 환한 대낮에 활동할 때는 마치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마치 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오면 한 발짝 내딛는 것도 주저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들어갈 때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우리 육신의 눈으로 걸어갈 수 없는 길이 앞에 펼쳐져 있을 때, 그 어둠 속에서도 보실 수 있는 분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어둠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어둠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과 어둠을 창조하셨습니다. 빛만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둠도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어둠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쉴 수 있겠습니까? 어둠은 우리를 쉬게 하고, 멈추게 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합니다. 어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일부를 누리며 살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체험
 
 
둘째,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주에 대해 지금까지 내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내 눈으로 주를 보게 됐습니다”(5절). 
귀로만 듣는 신앙에서 눈으로 직접 보는 체험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욥이 모든 고난을 통과한 이후 얻은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체험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들었던 신앙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는 체험,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욥이 고난과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얻게 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욥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숨어있던 깊은 교만을 회개합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한탄하며 티끌과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6절).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동방의 의인으로 불릴만했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실 만 했습니다. 그런 욥에게도 회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자기 의가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점차적으로 드러내십니다. 깊은 어둠을 통해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의, 숨겨졌던 의를 밝히 드러내시고 회개케 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찾아온 영혼의 어두운 밤이 아니고서는 숨어있는 자기 의를 발견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욥기의 주제는 ‘욥과 같은 의인도 회개할 자기 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회개란 무엇입니까? 아무리 엄청난 고난을 통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게 되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밤이 임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교만, 자기 의를 발견하고 회개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지만 때로는 어둠을 통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욥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는 과정이 아닙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아닙니다. 어둠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역사를 드러내시고, 정결케 하시고,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가까이 연합하도록 만듭니다. 때로는 고난이 없어도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더 친밀하게, 하나님을 더 가까이 모시며 살아가는 영혼 가운데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이 온전히 쓰러지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어둠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어둠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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