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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가‘갈대상자’일 수도 있다

 2017-07-17      제1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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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공동체의‘1다락방1사역’
베이비박스 봉사를 다녀와서

 
최근 영아유기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쓰레기 더미와 모텔 화장실 천장에서 신생아가 발견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신생아 시신 2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영아유기 범죄는 2010년 이후 급속도로 증가했다. 2010년 69건에서 2013년 225건으로 3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4년부터 줄어들다가 지난해 109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이렇게 신생아들이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베이비박스’다. 베이비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들이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가 2010년 4명, 2012년 67명, 2015년 206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비박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아기가 949명이나 된다. 한 달 평균 15명을 살린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12월 서울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가 처음 베이비박스를 운영했다. 온누리교회 여의도공동체가 올해부터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를 1다락방 1사역지로 선정하고 섬기고 있다. 임장순 집사(여의도공동체)가 베이비박스 사역의 의미와 간증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임장순 집사
(여의도공동체)

“모세를 키웠던 유모의 사랑과 손길처럼 우리들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보다 값진 동참이 또 있을까.”

‘ 베이비박스’ , 한 번쯤 언론보도를 통해 들어보았음직한 이름이다. 2017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내가 이곳과 인연을 맺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난 6월 24일 맑은 토요일 아침 나는 예상치 못한 베이비박스와의 첫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의도공동체 사역으로 베이비박스 봉사가 선정된 것이었다.

관악구 난곡에 소재한 베이비박스는 주사랑 공동체교회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다. 담임목사님이 어느 추운 겨울날, 교회 앞에 아들을 두고 간 한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나서 자칫 아이의 생명이 위태롭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설운영을 결심하셨다. 베이비박스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유기되는 생명을 조금이라도 구하고자 아기를 익명으로 두고 갈 수 있도록 건물 외벽에 설치한 신생아 보호장치이다. 많은 미혼모, 미성년자들이 아기를 놓고 가는데 심지어는 10대 여학생이 화장실 분만을 하고 탯줄도 정리하지 못한 채 베이비박스를 찾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2년 79명을 시작으로 매년 증가하여 지금은 매년 250명~300명 정도의 아기가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아신고를 통해 정부기관으로 보내지거나 입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으면 벨소리가 난다. CCTV를 통해 확인한 즉시 부모를 쫓아가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설득하고, 평생 생이별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적사항을 남기도록 하고 있다. 사회적 보호장치가 완전히 구축되어 버려지는 아기들이 없게 될 때까지 최후의 긴급 구제처로서 베이비박스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종국적으로 베이비박스의 소망은 사업의 확장이 아니고 유기되는 영유아가 사라지고 베이비박스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여의도공동체에서는 매달 1회씩 다락방별로 베이비박스를 방문하여 청소봉사를 하고 소정의 헌금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첫 만남이 있던 날,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소식에 버스를 타고 도착해보니 제법 높은 언덕배기에 시설이 위치해 있었다. 오랜만에 가벼운 등산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에 감사드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기와 생이별을 하려고 이 언덕을 많은 사람이 땀 흘려 오르며 몸과 마음 모두가 힘에 겨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시설운영자의 간단한 소개를 듣고 나서 여성은 실내청소, 남성은 옥상폐기물 정리, 건물외벽청소를 시작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성껏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고, 버려진 쇠붙이와 나무기둥들을 치우며 손에 가시가 박히는 줄도 모르고 정리하다보니 어느덧 이마에 구슬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설 안에는 많은 도움의 손길이 보내온 다양한 유아용품(분유,기저귀, 놀이기구 등)들이 적치되어 있었는데 그 물품들을 정리하는 일도 우리 다락방식구들의 몫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하는 동안 ‘ 내가 원래 집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는 사람이었나?’ 하는 애교 섞인 질문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사랑의 손길들이 보내온 지원물품들을 보며 아직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안도의 생각이 들었다.

청소하던 중 베이비박스 위에 적혀있는 문구가 눈에 걸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

‘Doing’과‘Being’
‘ Doing’ 과 ‘ Being’ 이라는 개념이 있다. Doing은 행위와 성과를, Being은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존재 자체의 소중함보다 그 존재가 이루어내는 성과를 더 중시하고 성과에 따라 존재의 가치를 매기며 살아가는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그래서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시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좌절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은 장애아여서 버리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버리고, 자기 인생에 걸림돌이 된다고 버리는 현실이 실로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저버린 성과중심의 이기심이 낳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청소하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와 성과와 무관하게 자녀라는 신분 때문에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버려진 한 생명도 소홀함 없이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나 역시 얼마나 사랑하고 계실까라고 생각되어 감격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가지 생각이 심각하게 내게 다가왔다. 버려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태어나보니 버려져 있었고, 이미 부모는 없어진 뒤였고, 그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도 그저 태어났을 때 주어진 상황이었을 뿐 내 스스로 잘한 일이 있어서 주어진 상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버려진 아기와 나와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 생각이 귀가길 내내 마음을 붙잡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존재 자체로 소중한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는 누군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열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아가자고 교만한 내 자신을 타일러보았다.

그날 밤 노곤한 피곤함마저 하나님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평안하게 누운 내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베이비박스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기상자쯤 되겠다고 느끼기도 잠깐, 이 아기상자가 곧 갈대상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자 속에 담겨 나일강가에 버려졌던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도구로 쓰임받았다. 비록 부모는 미숙하여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면 버림받은 아이들이 이 시대의 모세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모세를 키웠던 유모의 사랑과 손길이 떠오르면서 우리 자신이 베이비박스 속 이 시대의 모세를 키워내는 유모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값진 동참이 아닐 수 없을진대 동참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막9:37).
돌아보건데 바쁜 내가 시간을 쪼개어 봉사하러 간다고, 나눠주러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가 오히려 치유 받으러 간 시간이었고 하나님께서 차려 놓으신 잔치에 초대받아서 간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베이비박스 잔치에 우리 모두를 VIP로 초청하고 계신다. 부디 잔치에서 모두 뵐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문의: 010-2375-3786

 작성자   온누리 기자 onnuri@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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