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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빚진 자로서... 강촌공동체 강화도 선교탐방

 2018-10-28      제1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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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빚진 자로서…
 
강촌공동체 강화도 선교탐방 
오색 빛깔 단풍, 드높고 파란 하늘, 청명한 공기… 
날이 너무 좋았던 지난 20일 강촌공동체가 강화도 선교탐방을 떠났다.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 비상하는 갈매기, 설레는 마음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어디를 봐도 장관이었다.
강촌공동체 선교탐방 코스는 강화도 복음의 성지로 불리는 교산교회, 성공회 강화성당, 갑곶순교성지 등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는 것 자체가 은혜였다. 그 아름답고 뜻 깊은 여행에 동행했다.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멸시와 천대만 가득했던 조선을 은총의 땅으로 회복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랑의 파수꾼이 되겠습니다.”
심길섭 장로(강촌공동체)의 뜨거운 기도가 교산교회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그 절절한 기도는 선교탐방을 함께 떠난 강촌공동체 성도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왔다. 강촌공동체 선교탐방은 교산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강화도와 교산교회 그리고 복음
강촌공동체가 강화도 선교탐방을 기획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신앙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김동언 장로(강촌공동체 대표장로)가 이번 강화도 선교탐방의 목적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강화도 선교탐방은 한국 기독교 역사와 믿음의 선배들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선교탐방을 하면서 복음의 은혜를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산교회를 첫 번째 행선지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 교산교회는 강화도 선교 역사에서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교산교회는 강화도에 복음의 씨앗이 처음으로 뿌려진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 강화도는 복음의 불모지였다. 당시 강화도 사람들은 병인양요(1886년), 신미양요(1871년), 운요호 사건(1875년)을 차례로 겪으면서 서양인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그 엄청난 반감을 강화도를 너무나 사랑했던 파란눈의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으로 없앴다. 
감리교 재물포교회 2대 담임목사(1대 아펜젤러 선교사)였던 존슨 선교사는 강화도를 너무 사랑했다. 강화도 주민들에게 전력을 다해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첫 번째 강화도 선교에 실패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존슨 선교사는 당시 제물포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이승환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승환은 곧장 주막을 그만두고 고향인 강화도로 내려가 어머니를 전도했다. 그리고 존슨 선교사에게 어머니의 세례를 부탁했다. 
그런데 당시 유지였던 김상임의 반대로 존슨 선교사가 강화도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승환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산을 넘어 존슨 선교사가 있는 강가로 갔다. 존슨 선교사는 강가에 있던 나룻배에서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선상세례를 베풀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산교회의 전신인 ‘시루미 예배공동체’가 만들어졌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말씀으로 물을 주면서… 
당시 마을 유지였던 김상임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난세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존슨 선교사가 준 한문성경을 읽고 진짜 십승지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복음이었다. 
김상임은 존슨 선교사의 도움으로 제물포와 평양신학회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가족들도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 기독교인이 된 김상임의 삶이 달라졌다. 소유하던 토지를 헌납하고, 지역 복음화에도 앞장섰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기독교는 천민들이나 여자들이 믿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유지였던 김상임이 기독교인이 되자 기독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고, 강화도에 교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 
조성준 성도(강촌공동체)는 강화도에 전해진 복음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선교사님들의 선교 여정을 따라가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영적으로 척박했던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말씀으로 물을 주면서 강화도 주민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도록 도왔던 존슨 선교님의 헌신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강화도에 뿌려진 작은 복음의 씨앗 하나가 엄청난 열매를 맺었다. 강화도에 교회가 200여 개나 세워졌고, 지금도 강화도 주민 25%가 기독교인이다. 
갚을 길 없는 은혜와 사랑 되새기며 
노영환 성도(강촌공동체)는 강화도 선교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고 했다.  
“당시 강화도 주민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삶에서  실천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에 빚진 자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노영환 성도의 말처럼 당시 강화도 교회 성도들은 삶으로 말씀을 실천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다음과 같은 일도 있었다. 
강화도 잠두교회 다니던 김 씨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서 복음을 들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을 읽고 큰 은혜를 받고 변화됐다. 김 씨 할머니는 종을 두는 것이 큰 죄라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교인들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여종 복심이를 양녀 삼았다. 노비에서 풀려난 복심은 김 씨 할머니를 친어머니처럼 섬겼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강화도 홍의교회에 다니던 종순일 성도는 빛 탕감과 관련된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을 읽고 채무자들 앞에서 차용증서를 불태워버렸다
강촌공동체는 강화도에 있는 유적지도 탐방했다. 성공회 강화성당에도 갔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 코프가 건립한 한국 최초의 한옥 성공회 성당이다.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 양식을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또한 강촌공동체 성도들은 갑곶순교성지에 있는 십자의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과정을 묵상했다. 그러면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되새겼다. 강촌공동체 성도들은 갚을 길 없는 은혜와 사랑을 깊이 되새긴 이번 선교탐방을 통해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작성자   권찬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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