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나는 빨래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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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래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019-01-27      제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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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이끌린 사람들

동자동 ‘돌다릿골 빨래터’ 지킴이 배기선 집사

board image<돌다릿골 빨래터에서 배기선 집사(좌)가 자활근로자(쪽방촌 주민, 우)와 함께 세탁한 이불을 개고 있다.>

 
“행복해요!”
단순하지만 묵직한 이 고백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백발이 성성하고 수더분한 인상에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 배기선 집사(강서공동체)가 기자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한 말이다. 배 집사를 행복하게 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다. 배 집사는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일하고 있다. 
조금 미안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의 이불은 정말 더럽다. 그 더러운 이불을 빨면서도 배 집사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는 동자동 주민이 다 됐다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수님이 떠오른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아이고, 말도 말아요. 이불이 어찌나 더럽던지… 처음에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이불이 얼마나 더러웠으면 피부병까지 걸렸다니까요. 지금은 괜찮아요. 내성이 생겼나 봐요(웃음).”
배 집사가 껄껄 웃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배 집사의 일터는 돌다릿골 빨래터(후암로57길 9-3)다. 돌다릿골 빨래터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세탁 편의시설(서울시, KT, 온누리복지재단 공동 운영)이다. 지난해 8월 개소했다. 
쪽방의 크기는 넓이가 3.3㎡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좁은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세탁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쪽방촌 주민들에게 돌다릿골 빨래터는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다. 
 
이방인 배 집사, 동네 형님이 되다
 
돌다릿골 빨래터에는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뿜어내는 소음과 열기가 가득했다. 변변한 냉난방 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여름에는 땀에 절고, 겨울에는 외투를 입고 일해야 한다.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배 집사의 얼굴에서 힘든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갈색 지갑이 까맣게 변색되고, 점퍼가 뜯어져 볼썽사납게 꿰매놨어도 늘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돌다릿골 빨래터는 단순히 쪽방촌 주민들에게 깨끗한 이불만 제공하는 곳이 아니에요. 저는 돌다릿골 빨래터를 통해서 이곳 주민들의 삶이 변화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그 생각만 하면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돌다릿골 빨래터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된다. 그런데 배 집사는 돌다릿골 빨래터가 개소한 이래 저녁 7시 전에 퇴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루 종일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살다시피 한다. 돌다릿골 빨래터에는 주민 7명이 자활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배 집사는 자활근로자들의 근무 배정 및 관리감독, 업무매뉴얼 교육, 장소 관리 등을 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서 거동할 수 없는 주민을 찾아가 직접 이불을 걷어오기도 하고, 깨끗하게 빤 이불을 다시 갖다 주는 일도 배 집사가 한다. 뿐만 아니라 배 집사는 쪽방촌 주민들을 초대해서 밥을 해 먹이기도 한다. 그 일을 ‘행복한 밥상’이라고 부르는데 처음에는 반응이 시큰둥하던 주민들이 지금은 너무나 좋아한다. 
“떡국, 삼계탕, 탕수육, 수육, 비빔밥 등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최고의 식사거든요. 주민들을 위한 최고의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있어요. 최고의 음식인 만큼 테이블 세팅도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아세요? 깨끗한 테이블보를 깔고, 김치도 예쁘게 썰어서 담아요. 정갈한 상차림을 보고 주민들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며 정말 좋아해요.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도 같이 먹기도 해요. 행복한 밥상을 통해 직원들과 주민들이 더욱 친해지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쪽방촌 주민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지내는 일이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돌다릿골 빨래터 개소 초기에는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민들의 반대와 거부가 상당했다.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뭐 하나 할 때마다 주민들이 웃통 벗고 반대했어요. 멱살 잡힌 적도 수차례고요. 욕은 기본이고 삿대질까지 당했어요. 그러던 주민들이 지금은 저를 형님이라고 불러요. 동자동 주민 다 됐다면서요.”
 
“희망의 주인공이 되어 주십시오”
 
배기선 집사는 1997년 온누리교회에 왔다. 계기는 아버지학교였다. 
“당시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아버지학교에 나가보라고 해서 온누리교회에 왔어요. 당시 저는 교회를 옷 쫙 빼입고 폼 잡으려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때 의류사업을 크게 했거든요. 직원도 수백 명 둘 정도로 꽤 잘 나갔어요.” 
폼 잡으러 교회 다니던 배 집사가 변했다. 아버지학교의 그 유명한 줄무늬 티셔츠를 만든 인물이 바로 배 집사다. 
“지금은 아버지학교의 대명사처럼 됐지만 처음에는 그 티셔츠를 보고 다들 ‘이런 걸 누가 입냐?’고 했어요. 하용조 목사님조차요(웃음).” 
아버지학교 수료 이후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아버지학교 봉사자로 3년 넘게 불꽃같이 사역했다. 그런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결국 아내와 이혼했어요. 재산을 모두 정리해서 아내에게 줬어요. 그 일이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정불화, 사업 부침 등을 겪던 배 집사를 버티게 한 건 신앙이었다. 신앙이 그에게 새로운 비전을 품게 했다. 
“나이가 들면서 은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은퇴 후에는 불우한 이웃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힘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조리사 자격증 따는데 1년이나 걸렸어요. 왜 그리 어려운지…. 저만 할아버지더라고요.”
배 집사가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 것들이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배 집사의 꿈과 비전은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   
“앞으로 돌다릿골 빨래터를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돌다릿골 빨래터를 통해서 쪽방촌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생활환경도 조금씩 개선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자활하면 이곳은 자활기업이 되는 것이고, 동자동 주민들은 자활공동체가 되는 것 아닙니까? 돌다릿골 빨래터가 사회적 기업이 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배 집사의 입술에서는 인터뷰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이야기뿐이었다.  주민들을 위한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부탁을 쉬지 않고 했다. 
“쪽방촌 주민 약 80%가 50대 이상인데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불면증, 정신이상 증상을 보이는 주민들도 많습니다. 또 쪽방촌 주민 대부분이 너무 적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거환경도 얼마나 열악한지 모릅니다. 방은 비좁고, 햇빛과 바람이 통하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합니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그 외로움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외로움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왔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호품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 그리고 격려입니다. 지속적으로 주민들을 찾아와서 손 잡아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같이 밥 먹는 일이 쪽방촌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합니다. 쪽방촌 주민들의 말벗이 되어주십시오. 여러분을 통해서 주민들이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이 그 희망의 주인공이 되어 주십시오.”
 
<서울역쪽방상담소(희망공동체) 봉사자 모집>
문의: 유 형 장로  010-8730-6188 
         김광훈 팀장 010-3710-5338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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