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교회 디자인은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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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디자인은 내 인생”

 2018-12-23      제12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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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교회 디자인의 산증인 ‘한백진 장로’

board image<온누리교회의 수많은 디자인을 담당해온 한백진 장로>
 

여기, 교회 디자인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가 있다. 온누리교회 디자인실 수장(首長) 한백진 장로(여의도공동체)다. 한 장로는 온누리교회 디자인의 산 증인이다. 
한 장로는 참 멋있는 사람이다. 나이가 일흔을 앞두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신선하고 밝다. 그가 평소 쓰는 말투에는 낙관적인 성격이 묻어있다. 교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한 장로는 “어쩌다 즐거워서 한 것”이라고 쿨하게 말했다. 그 어쩌다 즐거워서 시작한 디자인이 온누리교회의 시각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한 입 베어 문 사과, 빨간색 바탕에 커다란 C 2개가 돋보이는 흘림체 로고, 녹색 바탕 속 왕관을 쓴 구불구불한 긴 머리카락의 여자와 그 옆으로 장식처럼 붙은 인어꼬리 모양…. 
이 설명을 들으면서 과연 무엇을 상상했을지 궁금하다. 이 설명은 세계적인 기업들을 상징하는 CI이다. CI(Corporate Identity, 기업 정체성)는 기업의 성격과 역할, 비전 등을 시각적 디자인으로 통일화한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기업의 로고, 심벌마크, 엠블럼 등이 CI에 해당한다. 
한백진 장로는 CI 디자인만 평생을 해온 디자이너이다.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명예교수, BDKA(한국브랜드디자인학회) 회장, 캘리그래피디자인센터장 등 디자인계에서 굵직한 직함을 달고 있다. 평생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쳤으며, 학회장으로서 각종 디자인 공모전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캘리그래피 강의를 통해 디지털 세상의 삭막함에 찌든 이들에게 손글씨의 아름다움과 아날로그적 여유를 소개하고 있다. 
한 장로는 온누리교회 디자인실을 20년 넘게 이끌고 있다. 오랜 시간 교회 디자인을 담당해온 만큼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온누리교회 디자인이 무척이나 많다. 온누리신문 로고 서체도 한 장로가 디자인했다. 2000선교, 꿈이자라는땅, 아름다운동행(가정사역본부), 하나님의훈련학교, 아버지학교, 하용조 목사 기념관과 기념채플 서체 등 교회 로고 대부분을 그가 디자인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온누리교회사역팀과 부서 로고는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교회 로고뿐만 아니라 두란노서원 출판물도 많이 했고요. 하용조 목사님 단행본도 하고, 잡지 <빛과 소금> 디자인도 참 많이 했어요.”
 
어쩌다 즐거워서 시작한 ‘교회 디자인’
 
한백진 장로는 어쩌다 교회 디자인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어쩌다보니 즐거워서 교회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어떤 사역팀에서 포스터 하나만 디자인해달라고 해서 해줬거든요. 그걸 하용조 목사님께서 보셨나 봐요. ‘이 디자인 누가 했냐?’고 물으시면서 저를 찾더래요. 하용조 목사님께서 저에게 교회 디자인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교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한 장로 혼자서 교회 행사, 사역팀,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홍보물과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에서 디자인 할 일이 많아졌다. 교회가 커지고, 비전이 확장되면서 따르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덩달아 한 장로가 디자인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늘었다. 일주일에 학교에 3일 나가고 나머지 4일은 교회에서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일이 많아지니까 저 혼자 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때가 IMF 시절이라 학생들이 취업이 잘 안 될 때였어요. 성적은 좋은데 취업이 안 된 제자 한 명을 데려와서 일을 맡겼어요. 그러다 또 한 명 데려오고, 또 한 명 데려오다가 온누리교회 디자인실을 꾸리게 됐습니다.”
교회에서 네댓 명이 하는 디자인이라고 우습게보면 결코 안 된다. 한백진 장로와 온누리교회 디자인실에서 만들어낸 작품들은 다른 기관들을 선도(先導)하는 디자인이었다.  
“다른 교회에서 온누리교회 디자인을 보고 배우고 싶다며 견학을 참 많이 왔어요. 우리 교회 디자인을 따라한 교회들도 참 많았고요. 대기업에서도 견학을 왔었어요. 사실 기업에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디자이너들이 있는데 고작 네댓 명 있는 우리한테 와서 견학을 하더라고요.”
예술가들의 전유물이자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의 고통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선도하는 디자인을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 오죽했을까. 한백진 장로에게 지치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새벽기도 나가면 디자인이 떠오르더라고요. 새벽기도 가서 무릎 꿇고 엎드려 있으면 갑자기 영감이 떠오를 때가 너무 많았어요. 바로 전날 제안 받은 디자인이 그 다음날 새벽기도에서 떠오르기도 했어요. 참 신기한 일이죠? 저의 디자인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손편지와 디자인 그리고 기도
 
한백진 장로의 신앙 역사가 참 재밌다. 그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된 늦깎이 성도이다. 결혼을 계기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저는 아내를 정말 잘 만났어요. 총각시절에는 교회를 안 다녔거든요.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처갓집에 갔는데 장인어른께서 ‘교회 다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장모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시커먼 사내가 와서 막내딸과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어요.” 
결혼은 해야겠는데 정말 큰일이었다.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쓴 손편지였다.  
“제가 글씨를 잘 썼어요. 아내한테 쓴 연애편지를 처형들이 돌려보고 그랬나봐요. 편지 내용은 뻔한데 남자치곤 수려한 글씨체가 처형들 마음에 들었나 봐요. 처형들이 나를 많이 도와줬어요. 장모님한테 ‘그만하면 됐지, 괜찮은 사람 같다’라고 힘을 많이 실어줬어요.” 
온누리교회에 오게 된 계기는 천안에서 만난 목사님의 추천 때문이었다. 
“천안에 있다가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아내가 서울 가면 어느 교회가 좋을지 목사님께 물어봤던 모양이에요.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온누리교회를 말씀하셨대요. 아내의 기도도 영향이 있었어요. 아내가 ‘남편이 디자인을 하는데 그 달란트를 쓸 수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기도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내의 기도대로 한 장로는 온누리교회에 오게 되었고, 자신의 달란트를 십분 살려 교회 디자인을 하게 됐다. 
“온누리교회가 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교회 디자인도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한백진 장로가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세상 앞에서는 당당하고 바른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했습니다. 교회 디자인을 사랑해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세상에서는 당당하고 바른 디자이너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백진 장로가 디자인한 로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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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진 장로 디자인 홈페이지>
블로그명: 한백진 교수의 글꽃정원
네이버블로그 주소: designhow.com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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