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넌 할 수 있어! 넌 다시 일어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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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할 수 있어! 넌 다시 일어날거야!” 

 2018-11-04      제12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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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하나님의 사랑, 기적을 노래하는 ‘김혁건 형제’


board image<사지마비 장애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가수 '김혁건' 형제>



삶이 기적 그 자체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락그룹 ‘더 크로스’의 메인보컬 김혁건 형제(동대문중랑공동체)를 보면 모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특전사 출신이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그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순간에 사지마비 중증장애인이 되었다. 어깨 밑으로는 전혀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처음에는 눈만 간신히 뜬 상태였는데 지금은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말도 하게 되었으며, 노래까지 하게 됐으니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김혁건 형제가 기적을 바랐기에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다. 고통 가운데서 만난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 천국의 구원을 만끽하며 다시 노래 부르고 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남자들의 명곡이죠!”
김혁건 형제를 만난다는 말에 지인이 흥분하며 한 말이다. 김혁건 형제는 락그룹 ‘더 크로스’의 메인보컬이었다. 폭발적인 고음을 자랑하던 실력파 가수였다. 지금 30대 남성들이 학창시절 정말 부르고 싶어 했지만 감히 흉내도 못내던 바로 그 노래 ‘Don’t Cry’를 부른 주인공이다. 
지난 10월 29일 MJ 스튜디오(성북구 아리랑로 4길 15)에서 김혁건 형제를 만났다. 고음을 자랑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내기 위해 누군가 지속적으로  배를 누르고 때려줘야 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돕는 손길이 없으면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장애가 있었다.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자의 주저함이 느껴졌는지 김혁건 형제 스스로 너무나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기 가수 한순간에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다 
 
사고 이후 재활훈련이 가장 힘들었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힘든 재활훈련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사고 이후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과 좌절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는 목숨을 끊을 수조차 없던 그 순간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참 위로와 평안, 천국을 선물해주셨다고 했다. 
김혁건 형제는 2003년 가요계에 데뷔했다. 데뷔곡 ‘Don't Cry’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남성팬들이 많았다. 솔로 앨범도 발매했다.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보컬 레슨 강사로도 입소문이 났다. 그는 28살에 특전사에 입대했다. 힘들기로 소문난 특전사 훈련을 받을 정도로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다. 
제대하고 더 크로스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앨범을 준비했다.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가 한순간에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 차와 충돌하고 공중을 몇 바퀴 돌아 도로 위로 쓰러지는 순간 죽음을 직감했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아, 이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군대에서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정신을 놓지 말라는 훈련이 그때 적용된 건지도 몰라요(웃음).”
병원에 도착해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에 온 부모에게 의사가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수술실로 들어갔다. 긴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말도 못했다. 눈만 간신히 뜬 그야말로 통나무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고통스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1년 넘게 욕창치료를 받았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재활훈련과 각종 치료를 거듭했다. 그런데도 몸 상태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재활훈련은 예전의 상태를 되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관절이 굳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합병증을 막기 위해 재활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병원을 전전하면서 거액의 병원비를 쏟아가며 병원생활을 이어나갔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싸움이었어요.”
그 힘든 시간 그를 지탱해 준 건 가족들의 사랑과 신앙이었다. 그의 부모는 늘 그의 곁을 지켰다. 한순간에 장애인이 된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성심껏 보살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격려하고 힘을 줬다. 
 
하나님 그리고 노래 
 
미국 유학 가 있던 친구가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 온누리교회였다. 
“친구가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주일마다 교회에 데리고 갔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교회와 교인들을 알아갔고 그들을 통해서 조금씩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순장님과 순원들이 나를 위해서 진심을 다해서 기도해주시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어떻게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고 아파해줄 수 있는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고 만나고 싶었어요.”
김혁건 형제는 일대일 제자양육을 받으며 하나님에 대해 알아갔고, 천국 소망과 구원을 확신하며 세례를 받았다. 
“재활치료도, 정신과 치료도 저를 낫게 해주지 못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님만이 나와 함께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며 제게 확신을 주셨어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수치심,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임했다.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노래도 다시 부를 수 있게 해주셨다.  
“서울대학교 방영봉 교수(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안수집사)님이 제가 사지마비 장애인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복식호흡을 돕는 로봇을 만들어주셨어요. 교수님 덕분에 제가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교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지금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위로, 평안 속에서 살고 있다. 세상 노래가 아닌 찬양을 하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신 일을 간증하고 있다. 2017년 KBS ‘불후의 명곡2’에서 가수 박기영과 함께 부른 ‘The Prayer’라는 노래가 그 신호탄이었다. 공중파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묵직하면서 아련한 고백을 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저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전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고, 위로가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신대원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김혁건 형제는 오늘도 희망과 하나님의 사랑, 기적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노랫말처럼 수많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선물하고 있다.  
“넌 할 수 있어 힘들지만 언제나 이겨냈잖아 어두운 밤 지나 태양이 눈뜰 때 넌 다시 일어날거야”(김혁건 작사, 작곡 ‘넌 할 수 있어’)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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