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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즈니스 선교사입니다”

 2018-03-20      제1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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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국내 최대 죽 프랜차이즈 ‘본죽’ 최복이 대표이사


board image<선(善)한 하나님의 기업 '본죽' 최복이 대표이사>

 
 
영락없는 소녀였다. 국내 최대 죽 프랜차이즈 ‘본죽’의 최복이 대표이사(서초A공동체)의 첫인상이 말이다. 그 소녀가 신앙과 사업, 선교를 이야기할 때면 눈빛부터 달라졌다. 밤하늘의 영롱한 별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신앙 정체성이 매우 분명했다. 자신을 ‘비즈니스 선교사’라고 소개하는 당당함이 돋보였다.
그녀의 삶은 롤러코스터 같다. 부(富)하다가 사업이 망해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죽지 못해 살던 시절이었다. 그 위기와 고통을 신앙으로 이겨내고 보란 듯이 재기하는 듯 했으나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위기에 직면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곡절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깊이 만났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으면서 간증을 차곡차곡 쌓았다. 죽 쒀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쓰고 있는 본죽 최복이 대표이사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죽 전문점 ‘본죽’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본죽은 한국에만 1,800개 가맹점을 가진 우리나라 최대 죽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최복이 대표이사는 본죽 외에도 본죽&비빔밥cafe, 본도시락, 본설렁탕, NGO 본사랑, 본월드미션(선교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사회선교(구제, 긍휼)와 해외선교에 쓰고 있는 그야말로 선(善)한 하나님의 기업이다. 그 아름다운 기업을 일구기까지 최 대표는 수차례 곡절을 겪어야 했다.
 
500원짜리 호떡 노점상에서
승승장구하는 사업가로
 
최대표의 첫 번째 사업은 500원짜리 호떡 장사였다. IMF 당시 남편(현재 본아이에프 김철호 대표이사)의 사업이 쫄딱 망한 시점에 시작했다. 남편은 잘나가던 사업이 망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풍족하게 살던 최 대표의 일상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많던 돈도, 좋은 집도, 비싼 차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설상가상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그녀를 괴롭혔다.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죽지 못해 살았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과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그렇게 500원짜리 호떡 파는 노점을 시작했다. 노점을 운영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노점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단속반을 어떻게 피해야 하고, 주변 영세 상인들의 견제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 속수무책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날이 속출했다. 그렇게 1년 동안 고생만 하고 노점을 접어야 했다.
호떡 장사를 접고 남편 지인의 회사에 취직했다. 음식점 창업 컨설팅업체였는데 그 회사 요리학원에서 주방보조로 일했다. 얼마 못가 해고됐지만 그때의 경험이 죽집을 차리는 밑바탕이 되었다.
최 대표는 장사가 안 돼 망하기를 거듭하다 권리금조차 없는 허름한 가게를 얻어 죽집을 차렸다. 그런데 많고 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죽이었을까?
“돈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죽이었거든요.”
국내 최대 죽 프랜차이즈 본죽이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 한 것은 아니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그 과정 역시 험난했다. 개업하고 7~8개월 동안 장사가 안 돼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하루에 죽 100그릇 판매가 목표였는데 몇 그릇 못 파는 날이 허다했다. 거기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시식하느라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장사는 안 되고, 메뉴개발하고 시식하느라 혀도 데고, 화상도 입고, 팔도 아프고….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고난 뒤에 있을 축복을 바라보며 견뎠어요. 그 고난의 시절 본죽에서 판매하고 있는 모든 메뉴를 만들었어요. 힘들다고 포기했으면 오늘의 성공은 없었을 거예요.”
노력이 빛을 발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줄 서서 기다리는 인기 매장이 됐다. 매출도 급속도로 올라갔고, 가맹점도 늘어갔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2010년에는 상복까지 터졌어요. 한국프랜차이즈대상 대통령상, 지속가능경영대상 지식경제부 장관상, 한국소비자웰빙지수 상 등을 휩쓸었어요. 그런데 사업이 잘 되니까 교만이 찾아오더라고요. 하나님이 하신 게 아니라 제가 노력해서 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만한 생각을 하면서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2011년 한 방송에서 본죽 가맹점에서 일어난 비위생적 실태를 고발했다. 가맹점주 몇 명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먹다 남은 재료로 죽을 만들어 판매한 일명 ‘쓰레기죽’ 사태였다.
“당시 저는 초심을 잃었어요. 매출 올리는데 급급해서 가맹점 관리를 제대로 못한 거예요. 장사가 잘 되니까 정신이 해이해진 거죠.”
최 대표는 이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우선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사과를 했다. 그리고 모든 가맹점 사업을 전면중단했다. 프랜차이즈 회사가 가맹점 오픈을 중단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래도 최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아니라 정공법을 택했다.
가맹점 쇄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기업 쇄신에도 들어갔다.
“예전에는 그냥 선한 부자였어요. 돈 벌면 좋은 일에 썼지만 내가 돈의 주인이었어요.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청지기 정신을 깨달았어요.”
기업의 정체성도 재정립했다.
“‘본죽은 하나님 기업’이라고 선포했어요. 전 직원 채플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고요. 위기가 초심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어요.”
최 대표가 선교에 목숨 건 온누리교회에 오게 된 것도 바로 이때다. 그때부터 그녀는 ‘비즈니스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 
 
“꼭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대표이사, 이사장, 창업주, 성공한 사업가 등 많은 직함을 가지고 있는 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이 있다. 그 호칭이 그녀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저는 비즈니스 선교사에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 ‘본죽’이라는 기업을 통해 선교하는 것이 비전이자 소명이에요.”
최 대표는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든 하나님께서 본죽이라는 비즈니스를 축복하셨기 때문에 그 축복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쓰는 게 옳다고 고백한다. 자신도, 기업도 모두 선교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사명이다.
“처음에는 선교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러다 전쟁고아를 돕는 사진전을 열기 위해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께서 오갈 데가 없다고 하셔서 제가 엄마 집에 모신 적이 있어요. 그때 선교사님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게 됐어요.”
선교사에게 방 한 칸 내드린 일을 계기로 그녀는 선교사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36칸짜리 선교사 전용 게스트하우스(본월드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선교사 숙소 지원만 하는 게 아니다. 사업을 선교에 접목해서 해외 매장을 ‘선교매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사업을 선교 도구로 쓰는 거예요. 선교사님들이 해외 매장(선교매장)을 통해서 선교지에서 겪는 비자 문제, 생계 문제, 사역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부자였다가 빈털터리가 되고, 또 다시 성공한 창업가가 된 최복이 대표는 고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삶에는 고난도 있고 형통도 있는데 우리는 고난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고난이 찾아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뜻을 돌아보아야 해요.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고난 가운데 꼭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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